[시론] 2002 대선 읽기
[시론] 2002 대선 읽기
  • 최연구 / 정치학 박사,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
  • 승인 2002.10.3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통령 선거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

바야흐로 또다시 대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철새 정치인과 의원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대이동을 시작했고, 몇몇 후보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정치판은 새로운 판짜기에 돌입했다. 대권주자가 몇 명으로 압축되었다지만, 누구를 찍을 것인가는 여전히 고민스러운 문제이다. 대선후보들의 정책공약이 표면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고, 또한 지금은 과거 군사정권때와는 달리 민주와 독재, 개혁과 보수간의 뚜렷한 대결양상을 띠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든 후보가 개혁, 반부패, 민주주의를 내세우기에 유권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찍을까’라는 실용주의적 관점이나 ‘누가 당선될까’라는 결과론적 관점은 오히려 대선의 정치적 의미를 왜곡시킬 수 있다. 차라리 대선을 정치척 훈련의 기회로 생각하고, 평소에 무관심했던 정치에 대해 고민해보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적은 정치에 대한 불신

다가오는 대선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정권교체 이후 처음 맞는 대통령 선거이다. 대북정책, 북미관계, 경제개혁, 복지제도 등 중요한 정책들은 결국 대권의 향방에 의해 크게 좌우되기에 우리나라에서 대선은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누가 당선 되는가보다는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참여가 더 중요하다. 그간의 여러 가지 지표에 비추어 볼 때, 국민들의 정치불신은 지속적인 투표율 저하로 나타났고 이제 그 정도는 위험수위에까지 이르렀다(상단 표 참조). 정치에 대한 불신은 민주국가로서의 정체성과 효율성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대 공적(公敵)이 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시기 프랑스의 정치가 조지 클레망소(1841-1929)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전쟁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장군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 전쟁은 국가의 운명이 걸려있는 중대사이기에 전쟁 지도자에게만 맡겨서는 안되고, 전국민의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 국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비단 전쟁만이 아니다. 국민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정치나 정치구도를 좌우하는 선거도 마찬가지이다.

대의민주주의체제에서의 정치적 대표성 문제에 대해 일찍이 장 자끄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18세기 영국인들은 매 5년마다 자신들의 대표를 직접 선출하므로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5년 중 단 하루만 자유로울 뿐이다.” 일반적으로 대표를 뽑는다는 것은 대표를 선출하는 사람들이 대표자들에게 통치권을 양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의회는 통제되지 않는다. 5년(또는 4년)이 지난 후 선거에 의해서만 의회가 통제될 뿐이다.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이다. 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지만 일단 선출된 대통령을 국민이 제어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대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선거때만큼은 국민이 자유로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가 진정한 자신의 대표를 뽑는 장이어야 한다. 선거에 임하는 유권자 개인은 자율적이고 합리적이고 공공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며, 선거공간에서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선택의 자유가 최대한 주어져야 한다. 이런 전제 하에서만 유권자들은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최선에서 최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가능성 중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인 국민 개개인이 지율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모든 선거는 자유와 자율을 전제로 진행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원론들은 막상 선거에 임할 때는 어떤 지침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성 정치세력의 합종연횡은 큰 의미 없어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 선거국면을 바라보자. 신당 국민통합21의 부상으로 민주-한나라당 양당대결구도는 3파전으로 치러질 공산이 크다. 하지만 당선권 바깥에 위치한 민노당 후보나 군소후보에게도 똑같이 귀를 기울여야 한다. 누구 1위가 되고, 누가 2,3위를 할까를 따지는 결과추수주의적인 관점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모로 돌아가도 서울만 간다는 식의 발상,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서울로 가는 결과에만 매몰된 채 왜 서울로 가야 하는지 그 목적을 망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민주적 선거가 되기 위해서는 복잡한 구도 속에서도 옥석을 가려내는 민주적 유권자들의 정치적 자율성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선거 구도 자체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재해석하는 자세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러했듯, 이번에도 기성정치세력들의 합종연횡은 정치인들의 눈속임에 불과하고,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기성세력에게는 과감히 민주적인 요구를 해야 하며, 시민들은 자율적인 토론과 논쟁을 통해 범민주세력을 국민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선거의 본질적인 의미는 누구를 뽑는가 하는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훈련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현재 누가 지지율 1위인가라는 지지율의 추이에 집착한다면 선거의 본질적 의미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 군소 후보까지를 포함하여 각 후보들의 공약들을 나름대로 비교해 보고, 각 후보들의 성향이나 정책 비전에 대해 토론하는데 적극적이라면 선거결과야 어떻든 대통령 선거라는 계기를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386세대의 전국회의원 모씨는 왜 철새처럼 신당으로 날아갔는지, 파란을 일으켰던 노풍은 왜 점점 식어가고 있는지, 탈냉전시대인데 보수세력은 왜 계속 견고한 지지기반을 유지하고 있는지 등의 정치적인 현상에 대한 부단한 토론과 충분한 논쟁, 우리들의 진지한 고민만이 우리 민주주의를 견실한 민주주의로 다져줄 것이다. 무릇 민주주의는 적극적 참여와 관심으로부터 시작된다. 바로 이것이 대선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