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아시안 게임과 북풍
부산 아시안 게임과 북풍
  • 박석호 / 부산일보 기자
  • 승인 200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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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망령 벗어날 때 통일의 길 가까워진다

북한이 오는 9월 29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제 14회아시안게임에 참가한다.지난 86년 이후 두 번째로 한국에서 개최되는 부산 아시안게임은 북한 참가에 따른 경기관중 증가, 수익사업 활기, 해외 언론의 관심 확대 등 여러가지 면에서 성공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북한이 이번 대회에 참가함에 따라 한반도 분단 57년 역사상 처음 남한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 행사에 남북이 함께 출전하게 돼 앞으로 남북 체육교류는 물론 각종 교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같은 긍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역대 남북관계가 한국정치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는 또다른 논란거리를 남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것은 바로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가 대선을 앞둔 한국정치와 선거정국에 어떤 식으로든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달갑지 않은 예측 때문이다.

북한 선수단이 남쪽으로 오는 까닭

아직까지 정치권은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에 대해 별다른 이견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줄기차게 반대해오던 한나라당도 이번 사안만큼은 애써 의미를 폄하하거나 또다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내지않고 있다.우리 정부가 북한 선수단에 대한 참가비 전액을 제공하는 등 엄청난 편의를 보장하는데도 ‘퍼주기’라는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올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열리는 대규모 남북체육 이벤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각 정당과 대선후보군이 이해득실을 따질수 있는 문제여서 정치권 내부에 미묘한 분위기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그중 가장 핵심으로 떠오르는 것은 북한의 국기(國旗)인 인공기(人共旗) 사용 문제이다.북한을 반(反)국가단체로 규정한 우리의 실정법(국가보안법)과 여전히 반공이데올로기에 묶여있는 국민정서상 전혀 도외시 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경기장 내의 인공기 게양과 메달 수여때 북한 국가(國歌) 연주,국기 게양은 아시안게임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 평의회 헌장에 명기된 사항으로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북한 응원단과 부산시에서 조직한 응원단(서포터즈)의 인공기 사용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는 현실적인 문제다.더군다나 최근 북한은 아시안게임 개폐막식 때 한반도기를 앞장세운 남북한 선수단 공동 입장을 주장하고 나서 조직위원회가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는 얘기도 나온다.북한이 계속 이같은 입장을 고집할 경우 자칫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진영간에 뿌리깊은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권도 지금까지는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라는 대의(大義)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못하고 있지만 이 문제가 쟁점화될 경우 언제든 문제를 제기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서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시안게임 답방문제를 놓고 ‘신(新)북풍’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북풍이란 집권세력이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남북관계를 이용하는 전략 혹은 그같은 의혹을 얘기한다.지난 2000년 16대 총선때 김 대통령이 선거를 불과 사흘 앞두고 남북정상회담 합의사실을 발표해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유리하도록 만들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이같은 북풍 논란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최근 내부 보고서를 통해 “(현 정권이) 아시아게임 개막식이나 폐막식을 이용해 김 위원장을 답방하게 함으로써 햇볕정책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동시에 남북관계 붐을 일으키고,결국은 이를 대선에 이용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일각에서는 월드컵 축구대회 이후 지지율이 크게 오른 정몽준 의원을 띄우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얘기도 하고 있다.한나라당의 대표적인 정보통인 정형근 의원은 “북한의 부산아시안게임 참가나 남북통일축구대회는 J의원(정몽준) 띄우기와 관련돼 있다”며 “김정일 답방시 월드컵 4강 진입 축하명분으로 J의원을 면담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합의가 끝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정형근 의원의 주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많은 투자를 해왔다는 점에서 북한이 그의 아들인 정몽준 의원에게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아시안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기 게양 등 ‘남남’ 갈등 재현 우려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라는 민족적 대사(大事)가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정치권의 바람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는 상황을 잘 반증해 준다.김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정권재창출을 위해 가능하다면 북풍이라도 불러일으키고 싶을지도 모르며 김정일 위원장도 자신의 답방카드를 통해 북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원이나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꾀하고 싶을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기대는 결코 녹녹치는 않을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우선 김 대통령의 경우 오는 12월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정권재창출이 되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쉽게 말해 누가 다음 대통령이 돼야 김 대통령 퇴임 후의 `안녕을 보장하고 그의 정책을 계승하는 것인지도 헷갈리는 상황이다.또 북풍이 분다고 해도 그것이 특정후보를 당선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할지 확신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도 마찬가지다.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에 빠져있는 김 대통령과 서울에서 만나봤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북한은 내다보고 있다.미국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책도 답방카드 하나만으로 쉽게 포기하게 만들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김정일 위원장도 모르진 않는다.

결국 이같은 분석을 통해 볼때 북한의 부산 아시안게임 참가는 정치권이 뭔가 의도를 가지고 툭툭 건드리는데도 불구하고 큰 신통력을 발휘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는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라는 역사적 행사만큼은 어느 정당 정파의 실익에 좌우되지 않도록 유도하는 지혜를 범민족적 범사회적으로 발휘해야 한다.그것만이 선거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북풍의 망령으로 벗어나는 길이며 민족의 통일을 한 걸음 앞당기는 시대의 소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