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무엇이 문제인가?
6.13 지방선거, 무엇이 문제인가?
  • 신원형 / 전남대 교수
  • 승인 200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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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는 중앙정치와는 다른 생활자치의 실현

6월 13일로 예정된 지방선거가 지역사회와 지역주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에 관련된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치단체장의 자격과 인물됨에 관한 것으로 어떤 인물을 자치단체장으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둘째, 현재의 지방선거제도와 선거풍토, 그리고 주민의식을 감안할 때 실제로 이러한 인물이 자치단체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셋째, 출중한 능력과 인품을 지닌 사람을 자치단체장으로 선출한다고 해서 지방의 발전과 지방자치의 제반문제가 쉽게 풀릴 수 있는가, 넷째, 기존 유수 정당 외에 무소속이나 진보세력 또는 녹색후보 등이 선출될 수 있겠는가 하는 등의 문제이다.

6.13 지방선거의 주요 쟁점

현대 민주주의는 그 이론적 전통에 있어 두 가지의 흐름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민주주의의 고전이론가들에 의해 구성된 참여민주주의의 사조이며 다른 하나는 현대 민주주의 이론의 주류로 분류되는 이른바 민주적 엘리트주의의 입장이다.

이 두 가지 입장 중 어느 입장을 따르더라도 선거제도는 민주주의 개념 규정의 핵심적 조건이며,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민주정치의 발전사는 선거제도의 개혁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어느 국가나 사회단체에서든지 선거가 그 유용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마땅한 인물이 후보자로 나와야 하며 그 중에서 최적의 인물을 바르게 가려 뽑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근본적 문제는 후보자의 인물됨이다.

그러나 현실로 눈을 돌려 볼 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인물됨이 아니다. 출중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있으며, 또 그가 출마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또한 출마의사를 가지고 있더라도 현행 선거제도와 선거풍토로 미루어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가 하는 점에 있다. 따라서 후보자의 출중한 자질보다는 선거제도와 선거풍토 그리고 선거와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의식이 보다 중요한 관건이 된다.

현행 선거법에 의하면 정당의 공천이 없는 무소속 후보자도 선거에 입후보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선거관행에서 정당의 공천과 지지가 곧 당락의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마땅한 후보자의 공천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당에 있다. 바람직하기는 주요 정당들이 당의 정치적 책략의 차원을 넘어 보다 대승적인 관점에서 유능한 인물을 발굴하여 이들을 공천하고 또한 언론과 시민단체들도 유·무형의 압력을 통하여 정당들이 마땅한 인물을 공천하도록 다그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이 그대로 통용되리라고 기대하기에는 우리의 정치현실의 도덕적 기반이 너무 취약하다. 우리는 과거 지방선거를 포함한 주요 선거마다 정당후보자 공천이 후보의 자질됨에 대한 합리적 기준보다는 책략과 술수와 금권으로 얼룩져 왔음을 보아왔다. 따라서 선거가 거듭될수록 자질과 능력을 갖춘 적합한 인물보다는 말로만 공익을 앞세운 이권이나 권력욕에 물들은 정치꾼이 더 행세해왔음을 목도하였다. 또한 몇 차례 겪은 지방선거를 보더라도 금권과 비리로 얼룩진 타락한 중앙정치의 전철을 답습했던 것도 기억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방선거에서의 정당배제론은 설득력을 지닌다. 정당으로부터의 유능한 인물의 공천을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면 지역사회 시민단체들이 지역지도자를 발굴하여 후보자 추대운동을 벌이는 것도 하나의 바람직한 대안이 된다. 또한 사회적으로 공신력이 높은 시민운동 단체들이 연합하여 공명선거운동을 벌이고 후보초청 정책질의 공청회 등을 개최한다면 그만큼 중앙정치에 줄을 댄 정치꾼이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어지리라고 기대된다.

또한 탁월한 능력은 갖추었지만 기존의 정치권에 별다른 연줄이나 재력이 없는 유능한 무소속 인사에게도 출마의 기회가 개방되도록 선거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 단체장으로서의 바람직한 조건에 대한 희망사항을 아무리 열거하더라도 그런 조건에 맞는 좋은 사람이 후보로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 따라서 좋은 사람이 쉽게 나설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껍데기는 가라’

유능한 자치단체장이 선출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 못지 않게 선거와 지방정치에 관한 유권자의 의식 또한 중요한 대목이다. 지방자치가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의 시대를 열고 지역주민이 관치(官治)의 객체가 아닌 민치(民治)의 주체가 되느냐의 여부는 궁극적으로 주민의식에 달려있다. 지역주민이 지방자치의 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관객의 위치로 한정시키는 한 지방자치는 권력놀음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주민의식과 연관해 우선 지적할 것은 우리의 정서에 깊숙이 남아있는 정(情)과 한(恨)에 바탕을 두고 있는 감성의 부하율(負荷率)을 낮추고 보다 이성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정치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후보자의 자질이나 능력·정책에 앞서 혈연·지연·학연 등에 의존하는 비이성적인 정치관행이 되풀이 될 때 지방자치는 여전히 추악한 권력게임으로 남게 된다.

두 번째 지적할 것은 후보자의 선택에 관한 기준이다. 지방선거를 포함하여 그간 치러진 주요 선거에서 주로 작용하였던 기준은 후보자의 인물됨보다도 지역주의 또는 지지정당과 연관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방자치는 생활자치라는 말이 의미하듯 중앙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인물됨과 지지정당이 일치하는 경우는 별 문제가 없겠으나 이번에 치루어질 선거에서는 무엇보다도 후보자의 능력과 인물됨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세 번째로 지적할 것은 정치 또는 후보자에 대한 시민적 기대수준을 낮출 것이 요망된다. 정치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쾌도난마(快刀亂麻)식으로 해결해줄 수는 결코 없으며 출중한 인물을 지도자로 뽑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 각자가 일상의 영역에서 공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자세이다. 특별히 뛰어난 아니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사람이 선출될 가능성이 많다) 최소한의 도덕성과 사회적 양심을 갖추고 아울러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려는 사람은 일단 합격점으로 보고 그가 어려운 여건 하에서 지역사회를 올바른 길로 꾸준히 끌고 갈 수 있도록 한편으로 감시하고 다른 한편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끝으로 선거기간은 물론 선거 이후까지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는 주민문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확산시켜야 한다. 선거기간 동안 주민들은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스스로의 자세를 가다듬어야할 뿐만 아니라 현란한 말만을 앞세우는 후보자를 가려내어 이들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선거이후에도 주민들은 항상 지속적으로 지방자치의 운영과 선출된 지도자의 행위를 평가·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여론을 진작시켜야 한다. 이렇지 아니할 경우 주민은 투표일에만 주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고 그 이후는 일상의 일에 파묻혀 지방정치로부터 소외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