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 패권주의와 한반도
[시론] 미국 패권주의와 한반도
  • 이철기 / 동국대 교수
  • 승인 200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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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미래지향적 정책 재정립에 ‘굴레’일 뿐

미국의 일방적 군사주의가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힘의 외교’를 강조하는 부시의 등장 이후, 미국의 안하무인식 행동과 패권주의적 정책은 세계 도처에서 갈등과 충돌을 빚고 있다. 드디어 지난 1월 29일에는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으로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은 바 있다.

미국은 탈냉전 후 세계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21세기에도 패권국가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과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정책도 이같은 전략과 정책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더욱이 전략중심축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옮김에 따라, 동북아가 미국의 세계전략과 군사정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커지고 있다. 미국은 중국을 21세기 미국의 세계패권에 도전할 경쟁국가로 상정하고, 중국에 대한 견제와 봉쇄를 동북아정책의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전략중심축을 아시아로 옮기겠다는 것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탈냉전시대 미국의 동북아정책 기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본과 군사동맹관계를 강화하여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다.

‘신냉전시대’ 도래하는 동북아시아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미일군사동맹이 강화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은 주일미군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억제하는 이른바 ‘병마개역할‘을 해왔다는 지금까지의 긍정적인 평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오히려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부추기며 동북아에 군비경쟁을 가속화시키는 부정적인 역할이 되고 있다.

미국의 중국 포위정책과 미일군사동맹관계의 강화는 동북아를 ‘신냉전시대’로 몰고 갈 가능성이 크다. 신냉전시대의 도래 가능성은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결과들을 초래할 것이다. 동북아에 ‘신양극체제’룰 재현시킬 것이다. 미일동맹축과 중국축을 중심으로 새로운 판짜기가 이루어지고, 이들 세력간의 대립구도로 인해 군사적 긴장과 갈등이 고조될 것이다.

또한 ‘신냉전시대’와 ‘신양극체제’의 도래는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외교안보정책과 전략의 폭을 좁히고 입지를 어렵게 할 것이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편가르기’와 ‘줄서기’에 강요당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를 손상시킬 것이다. 결국 신냉전시대의 도래는 한반도 통일환경의 악화를 의미한다. 한반도의 분단이 바로 냉전의 산물이고 냉전체제가 과거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는 구조적인 장애물이 되어 왔다는 점에서, 신냉전시대의 도래는 한반도 통일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것이다. 동북아질서가 다시 편가르기를 통해 양극체제화하고 남북이 각기 어느 한 쪽의 군사동맹체제에 더욱 견고히 편입된다면, 통일은 더 어려워지고 한반도는 분단고착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한편 부시 행정부의 한반도정책 역시 한반도에서 냉전체제 해체와 남북간의 화해협력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잘나가던 남북관계가 삐꺽거리기 시작한 것은 부시 등장 이후이다. 미국은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에서 냉전체제의 해체를 원하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급속한 진전과 남북간의 화해, 그리고 한반도문제의 남북한 주도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미국의 전략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특히 MD계획과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남북간에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고 한반도에서 ‘적당한 긴장’이 조성되는 것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분단된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기하는 ‘two Koreas 정책’이다. 미국의 정책과 전략의 틀에 얽매여 있는 상태에서는 한반도에서 냉전해체도, 남북의 통일도 불가능하다.

표면적인 대화재개 의사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진심으로 북한과 대화할 의사와 의지가 없어 보인다. 작년 6월 6일 부시는 북한과 대화재개를 선언했지만, 미국이 제시한 대화 의제는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다. 미국은 조건없는 대화를 말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의제 속에는 사실상 많은 전제와 조건이 함축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썩은 당근’을 내밀고 받을 것을 강요하고 있는 꼴이다. 94년 <제네바합의문>과 99년 <베를린합의>, 2000년 10월 <북미공동성명>과 같은 기존의 북미간 협상결과와 합의사항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의 강경정책에 대한 명분과 구실을 위해서라도, ‘불량국가 북한’, ‘테러지원국 북한’, ‘미국안보에 위협을 주는 북한’이 필요한 실정이다. MD계획의 명분 약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북한미사일에 대한 협상에 나설 이유도 없다. 북미관계가 근본적으로 풀릴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핑계대고, 눈치보는 일은 이제 그만
이같은 미국의 패권주의정책은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미국의 역할과 한미관계에 대한 기존의 생각에 의문을 던져주게 하고 있다. 이는 한미관계의 재검토와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 한미동맹관계와 주한미군이 한반도에서 전쟁억지력으로서 역할을 해왔음을 아무리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미국은 한국이 외교안보정책을 미래지향적으로 재정립하는데 일종의 굴레가 되고 있다. 심지어 부시 행정부 등장후 보여준 일련의 상황들은 미국의 존재가 한반도에 전쟁을 몰고 오고 민족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제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과 장래를 논의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주한미군을 보는 시각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진보주의자들만의 주장도 아니고, ‘반미’의 문제도 아니다. 한반도에서 냉전을 해체하고, 우리의 미래지향적 외교안보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강경정책 속에서 남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남북이 중심이 되어 자주적으로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또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6.15 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한다는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북쪽은 미국 핑계를 대지 말고, 남쪽은 미국 눈치를 보지 말자. 시간이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