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민주당 대구, 경북 지역 국민경선대회 취재기
새천년민주당 대구, 경북 지역 국민경선대회 취재기
  • 김정묵 기자
  • 승인 200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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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이라...’. 고향은 대구, 학교는 포항인 기자는 새천년민주당 16대 대선후보 선출 대구, 경북지역 경선 대회장에서 ‘아는 사람’을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꽤 많은 주위 사람들이 선거인단 공모에 응했는데도 ‘대회장에서 만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의 의미, 선거인단 공모 경쟁률이 60:1에 이른다는 것의 의미는 사뭇 크다.

한국 정치사상 최초로 실시되는 국민참여 경선이, 각 후보들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가운데 자기 지역 출신 후보에게 표를 던져 온 광주지역 선거인단이 다른 지역 출신 후보에게 압도적으로 1위표를 던지고 그 수혜자로 철벽같다고 믿어지던 ‘이인제 대세론’을 단숨에 날려버린 ‘노풍(盧風)’이 불어 전 국민의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한 ‘16부작 주말 정치 드라마’가, 민주당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보여 오던 대구, 경북에서도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경선장 주변은 노사모 회원들과 이인제 후보 지지자들의 열띤 구호로 흡사 인기 스포츠를 관람하러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노~무현 짱! 짝짝~짝짝짝!” 붉은 악마의 응원을 따온 구호와 ‘마징가 제트’를 개사한 ‘노짱가’ 등으로 신이 난 200여명의 노사모 회원들은 도시락을 싸서 나온 일가족부터 여중생, ‘바위처럼’ 율동을 지휘하는 대학생, 등산복 차림의 40대 아저씨, 60대 할머니까지 모두 자비를 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초록색 스카프를 들고 “이인제! 대통령!”을 연호하는 이인제 측 지지자들은 정장 차림을 한 중년층이 주를 이루어 풍물패까지 동원해 흥을 돋우고 있었다. 양측은 행사 시작 두어시간 전부터 개표가 이뤄질 때까지 무려 너댓시간을 넘게 대구와 포항의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응원을 계속해,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선거인단이 “하이고, 돈 준다 캐도 저렇게는 못 할끼다”며 탄성을 터뜨릴 정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서 적극적인 운동을 펼치는 모습은 정치권의 ‘안방 잔치’였던 경선에서부터 국민과 선택권을 공유하겠다는 국민 경선의 취지를 한껏 살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지지’를 받는 후보들은 새로운 정치의 틀인 국민 경선에 걸맞지 않았다. 처음 일곱 명의 주자가 경선을 시작할 때에 비해 3명의 주자들로 줄어든 현재, 자신의 정책적 차별점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이나 색깔론 등 퇴행적인 수법을 비롯, 경선 불복 등 타 후보의 전력에 대한 시비와 그 해명으로 일관하거나 경선의 ‘판 유지’만을 자신이 얻을 소중한 한 표 한 표의 가치로 내세우는 모습은 당내의 경선이라 하지만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격에 대해 국민의 검증을 구하는 모습이 분명히 아니었다.

이러한 후보들의 일그러진 모습은 지지자들에게도 이어져 투표 결과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크게 밀린 이인제 후보의 지지자들이 개표 후에 프레스 센터로 몰려들어 “언론이 조작되었다”며 소동을 벌이다가 출동한 경찰의 제재를 받고 해산한다든가 “빨갱이를 국모로 모실 순 없다”며 “탈당하자”는 등의 극렬발언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돌아오는 길에 택시 기사는 “노무현이 또 이겼냐”며 관심을 보이면서도 “이사람 저사람 많지만 확실한 사람이 없다. 차라리 독재하더라도 똑부러지게 하는 게 낫다. 박대통령은 국민들 배부르게는 해 주지 않았나. 찍을 사람 없어 투표도 하기 싫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의 우리 정치가 얼마나 민생을 떠나 있었는가를, 그리고 국민경선이 국민의 관심을 불러왔지만 각 후보들이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정책 대결을 통한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한 정치 무관심을 극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선거에서의 참패와 내부의 쇄신 요구에 헤매던 민주당이 도입한 국민 경선제는 일단은 성공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국민 참여경선 뿐만 아니라 선호투표, 전자투표 등 획기적인 선거 방식의 과감한 도입과 급조했다는 혹평도 감수해야 할 만큼의 길지 못한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매우 안정된 대회 운영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경선의 성패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국민의 참여 역시 190여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선거인단에 응모함으로써 달성되었고 이에 따라, 선거 열기 과열에 따른 돈-조직 선거 등 기존 선거의 구태 재현에 대한 우려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또한, 전자투표나 경선장면 인터넷 생중계, 각 후보자들의 홈페이지 활성화 등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20~30대 젊은 층의 관심과 참여를 불렀고 그 상징적 코드인 ‘노사모’는 정치에 대한 적극적 참여로 경선 전체의 방향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경선 초기부터 문제로 지적되었던 후보자 개인에 대한 상호 비방은 그칠 줄 모르고 오히려 점점 더 심해져 이제 경선의 성과마저 빛바래게 할 정도이다. 그리고 이는 비전 제시, 정책 대결 등의 건전한 논의의 발목을 잡고 있어 실로 ‘오래간만에’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국민들에게 신뢰를 전하지 못한 채 등을 돌리게 하여 80%를 상회했던 투표율은 이제 50%대를 맴돌아 ‘국민 참여’라는 이름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제 ‘16부작’의 경선도 부산, 경기, 서울만을 남겨 그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이 세 지역의 선거인단, 국민은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마지막이라 하나, 후보 개개인의 승패는 물론, 경선 전체의 성패를 새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후보들의 달라진 모습과 국민들의 관심으로 이 ‘위대한 정치 실험’이 성공리에 막을 내리길 바란다.

그리고 지난 13일, 인천에서부터 시작된 한나라당의 경선 역시 홍보 부족에 의한 미비한 공모율과 짧은 준비 기간에 의한 후보들의 정책 부재를 딛고 진정으로 국민의 뜻을 수렴해낼 수 있는 장이 되기 위한 노력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