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
  • 승인 2007.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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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봄, 정확히 20년 전, 포항공대에 첫 새내기가 들어왔다. 산을 반쯤 깎아놓아 붉은 흙을 드러낸 건물공사 현장 사이로 그들은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공부해야 했다. 역사도 전통도 없이 이제 막 새로 시작한 대학, ‘서울공화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의 한 귀퉁이 소도시에 세워진 작은 대학이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검증된 학교로 진학할 수도 있었던 우등생들이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뒤로 한 채 이곳으로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개교 초기의 상당수 입학생들은, 당시 ‘포항공대’에 지원하고자 했을 때 부모님과 모교 선생님들의 심한 반대를 무릅써야 했다고 말한다. 부모님과 선생님들로서는 그들의 자식과 제자들이 안정되고 보장된 것을 누릴 수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포항제철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최고의 연구 및 교육 시설을 준비하고 이름있는 석학들을 교수로 임용한다 했지만, 이는 위험천만한 모험으로 보였을 뿐 학교의 성공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포항공대를 평생의 모교로 정한 이들의 선택은 한 마디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수들로서도 첫 작품을 대충 만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뜨거운 열기로 포항공대는 새로운 도전의 용광로가 되었다. 훌륭한 연구결과가 나오기 시작하고, 제대로 훈련받은 졸업생들이 사회로 진출하여 인정받으면서 국내외로 포항공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포항공대’라 하면 그야말로 지방의 조그마한 신설대학 정도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는 과학기술계를 이끌고 있는 아시아의 대표적 연구교육 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새내기들처럼 이제 겨우 약관(弱冠)을 맞은 우리대학의 현재 모습이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목표로 하던 것들을 이루어나가는 동안, 빠르게 잃어가는 것도 있는 듯하다.

우리는 많이 컸다. 유명세도 타고 있다. 이제 우리대학을 선택하는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어느새 우리는 안정적이고 보장된 길에 들어섰다. 새내기들에게 묻고 싶다. 온 몸으로 진흙 바닥을 다지고 벽돌을 쌓기 위하여 왔는가, 아니면 신발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잘 포장된 깨끗한 길을 선택한 것인가?
우리의 갈 길은 멀다. 선배들이 닦아 놓은 길은 완성되기는커녕, 아직 얼마 되지 않아 굳지도 않은 신로(新路)이다. 우리가 원하는 새내기는, 포장된 길 끝까지 달려가서 진흙탕에 뛰어들어 디딤돌 하나를 더 놓을 인재이다. 여전히 우리는 모험을 하고 있다. 우리의 초기 정신이었던 도전정신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길은 한창 작업 중인 새 길이 아니라 미완성인 채로 버려져 잡초와 흙먼지에 덮여 사라질 폐로(廢路)임이 분명하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용기있는 선구자들이 어렵게 나라(왕조)를 세우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개국정신은 희미해지고 평안 속에 안주하면서 세상은 다시 어지러워졌다. 이때 다시 새로운 선구자가 나타나 새 나라를 세우는 역사의 순환을 우리는 익히 배워 왔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적절한 계기에 다시 초심(初心)을 추스르고 개혁하는 나라는 대대손손 번성한 반면, 그렇지 못한 나라는 채 한 대를 잇지 못하고 폐망했다.

근래에 우리대학의 정체적(停滯的) 위기감이 화두에 오르곤 한다. 자조(自嘲)가 아니라면, 이러한 위기감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안주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며, 도전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꿈과 의지로 똘똘 뭉쳐 무모함을 성공으로 바꾸었다. 진흙에 몸이 더럽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한도전의 정신으로 충만한 새내기가 매해 봄 교정을 활보한다면, 우리대학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꿈으로 가득찬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새내기 여러분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