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도에게 필요한 기술
공학도에게 필요한 기술
  • 승인 2006.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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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연말을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쯤 해서 예비 대학원생들에게서 항상 받는 질문이 있다. “교수님, 겨울 방학 동안 어떤 과목을 더 공부하고 입학하는 것이 좋을까요? 확률 공부를 할까요, 아니면DSP 책을 다시 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지난 10여 년간 한결 같다. “시간 있을 때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책 많이 읽고 일기 쓰다 오세요.” 마음같아서는 논술 학원에 가서 기본적인 읽기 쓰기 공부를 다시 하라고 하고 싶지만 좀 지나치다 싶어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못한다.
대학원 뿐만이 아니라 공과대학에 입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뛰어난 수학적 능력이나 과학적 분석력을 공학도로 성공하기 위한 충분조건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학도에게 이러한 이과적인 능력은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최근 우수한 이과 지망생들이 공학을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사나 변호사에 비해 35정, 48선, 56도라는 말로 표현되는 직업의 불안정성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공학도 중에도 40, 50세를 넘어서까지 의사나 변호사 못지않은 대우를 받으면서 보람 있는 직장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35세에 직장을 떠나야 하는 사람과 56세 이후까지도 직장의 필요한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학적 능력만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장수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학적인 능력이라고 해도 많은 경우 40세를 전후하여 그 수명을 다하기 마련이다. 끝없이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오고, 머리회전이 빠른 젊은 공학도들이 치고 올라와 이들과 기술적으로 직접 승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한 사람의 직위가 올라감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점차 그 한 개인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결과에서 그 사람이 거느리고 있는 조직이 이루어 내는 결과로 바뀌어간다. 아무리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그 사람이 자기 밑에 효율적으로 거느릴 수 있는 조직을 갖지 못하거나, 스스로가 상사의 뜻을 신속히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거나 또는 대외 관계를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조직에서의 그 사람의 효용가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급속히 떨어지게 된다. 오히려 이러한 경우 그 사람의 뛰어난 공학적 능력이 성공의 장애 요소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상사의 뜻을 잘 이해하며 아래 사람들을 제대로 이끌어나가고 대외관계를 원만하게 끌고 나가기 위해 필요한 능력의 요체는 무엇일까? 공학적 능력이 점차 소진되어감에 따라 그 빈자리를 메워주어야 하는 능력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소통능력 (communication skill)” 이다. 바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과 글로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도 경청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다. 물론 점차 국제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이러한 소통은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가능해야 함은 자명하다.
불행히도 현재 한국의 교육체계와 입시제도 하에서는 이러한 소통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기회가 학생들에게 주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본인의 의사소통 능력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문제점의 심각성을 느끼는 첫 경험이 아마도 대학원에 입학하여 지도교수에게 연구결과를 보고하거나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면서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논문 작성 과정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리하여15년이 넘는 교수생활을 통해 학생들의 소통능력 배양이 나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물론 이러한 소통능력도 기본적 필요조건인 전공분야의 탄탄한 지식기반 없이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출중한 전공분야의 지식 없이는 우수한 소통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를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에게는 장기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능력을 배양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 포스텍이 지방에 위치해 있고, 이과 전공이 주여서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학생들과의 교류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포스텍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다방면으로 학생들의 소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과 학과목을 개발하고 있다. 아무쪼록 우리 학생들이 공학적인 경쟁력뿐 아니라 국제화 사회에서 필수적인 소통능력을 적극 배양하여 훌륭한 지도자로서 성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