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이유
희망의 이유
  • 승인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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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에서 편을 나누어 극한적으로 대립했다. 탄핵, 신행정수도 이전, 4대 개혁입법, 계층 갈등, 수능 부정, 끝을 알 수 없는 불황 등... 작년의 이러한 정치경제사회상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얼마 전 오피니언 리더들이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무리와는 당을 만들고 다른 자를 배격한다-를 선정하였다. 작년 한 해의 대학상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는 더 긍정적인 것이 되었을까?

흔히 새해를 맞으면 나쁜 기억은 빨리 잊고, 희망에 찬 새로운 결의를 시도하곤 한다. 아마도 대학과 관련된 새해 결의에 ‘변화와 개혁’, ‘제2의 도약’, ‘선택과 집중’과 같은 수사들이 다시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어들은 이전에 수많은 글들의 단골 제목으로 이미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단어들만의 나열은 더 이상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지 않고, 공허한 구호성 외침으로 들린다.

작년 국가적 차원의 그리고 대학의 암울했던 뉴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새해에 다시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년 전 포철 백록대에서 박태준 당시 포철회장과 김호길 박사의 운명적 만남으로 시작된 포항공대의 신화에 대한 믿음 때문인가? 개교 시부터 줄곧 꿈꾸어 왔던 세계적 수준의 대학의 실현에 대한 기대감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인가?

최근 학내외의 거센 도전에 포항공대의 신화는 흔들리고 있으며, ‘세계적 수준의 대학’(world class university)으로의 도약은 아직 머나먼 과제로 남아 있다. 작년 나노기술집적센터, 지능로봇연구센터,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 시스템바이오다이내믹스 국가핵심연구센터 유치 등 대학 발전 차원에서 다소 긍정적인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진정 세계적 수준의 대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구과제 유치나 건물확보 차원을 넘어 ‘세계적 수준’에 대한 발상의 전환과 대학 본부뿐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보다 멀리, 넓게 내다보고, 경직된 사고의 틀을 과감하게 깨고 새로운 길을 열어가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카이스트에서 러플린 총장이 일으킨 엄청난 파장은 언젠가 우리에게 ‘츠나미’(Tsunami)가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우리 대학은 내년에 설립 20주년을 맞게 된다. 개교 초창기 국가적 관심 속에 화제를 양산해왔던 대학이 성년도 되기 전에 벌써 노쇠현상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우리 대학의 구성원들은 대학 발전의 핵심이자 희망이다. 하지만 구성원들의 목표의식 상실, 의욕 감소, 노쇠화로 인한 무기력의 만연과 침체는 이들이 미래를 위해 필요한 변화와 개혁을 적극적으로 수용, 참여를 막고 있다. 벤처기업의 4가지 흥망과정에서 마지막 단계는 ‘Plundering phase’-이익은 계속 내고 있지만 경쟁력은 떨어지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우리도 마냥 ‘잘 되어가고 있다’는 홍보만 하다가는 언제 어떻게 도태될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 대학이 변경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발전목표가 일부가 아닌 전체 구성원의 것으로 공유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의 구성원들은 단순한 인화, 또는 설득 홍보 차원의 피상적 대상이 아니라, 꿈을 공유하는 주체적인 참여자이자 미래의 대학 리더로 육성되어야 한다. 또한 이사회 대 대학, 본부 대 교수, 기초과학 대 공학 등 ‘당동벌이’식 편가르기는 이제 지양하고, 모두가 총체적인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떻게 지역화 흐름 속에서 세계화를 추진해나갈 것인가, 전문적 지식뿐 아니라 독립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글로벌 리더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산학협력을 통한 지역과 국가경제 공헌과 기초과학에서의 수월성 제고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고 김호길 초대 총장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의 오랜 리더십 혼란, 이사회와의 더욱 멀어진 거리감 등 판도라 상자에서 뛰쳐나온 ‘실망, 고통, 분노’ 등으로 점철된 기억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마지막 남은 희망을 꺼내야 한다. 그것은 희망은 스스로 구하는 것으로, 삶의 굴곡 속에서 아무리 지쳤을지라도 이로부터 새로운 힘과 활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독수리 등 뒤에 올라탄 암컷 굴뚝새’처럼 구성원들이 더 높이 날 수 있도록, 대학의 리더들이 이들의 희망과 용기를 더 북돋아 주기를 기대한다. 잘못했을 때 뒤늦게 뒤통수를 때리는 대신, 평소에 긍정적인 면을 북돋아주는 칭찬은 ‘돌고래도 춤추게 한다.’

을유년 새해를 맞아 우리 구성원들이 포항공대의 신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다시 캠퍼스에 희망이 가득차도록 서로 생각을 나누고 칭찬하자. 올해는 오행상 성장을 뜻하는 목운(木運)과 결실을 뜻하는 금운(金運)이 왕성해지는 시기라고 한다. 을유년의 새벽, 힘찬 닭울음 소리와 함께 시작한 희망찬 한해가 ‘당동벌이’ 대신 보다 긍정적인 사자성어로 마무리되기를 다시금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