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성과급제’의 도입과 관련하여
‘교수 성과급제’의 도입과 관련하여
  • 승인 2004.12.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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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재단의 주도하에 총장에 의한 교수 성과급제가 시행됨에 따라 많은 논란이 일고 있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교수들도 적지 않다. 말 그대로 성과와 업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은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미국의 유수대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온 제도이다.

성과급 차등화 논리는 단순하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주어 목적하는 바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장려하는 동시에, 뒤지는 사람에게는 인센티브를 축소하거나 주지 않음으로써 자극과 노력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제도라도 그 시행에 있어서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겪게 되는데, 이를 건설적으로 수용하여 조정하지 못한다면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따라서 시행세칙이 마련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몇 가지 우려되는 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선, 최근의 성과급제 도입과 관련하여 안타까운 점은 본 제도의 시행이 재단의 이니셔티브로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학과, 대학, 그리고 재단 모두의 논리와 변론이 있을 수 있겠으나, 서로간의 신뢰에 금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모든 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신뢰이다. “성과급”이라는 용어 자체가 과연 교수의 직분과 역할을 평가하는 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도입되는 제도의 핵심은 기존 연봉은 고정되고 앞으로는 성과급만으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의 교수 인적구조는 역 피라미드형이다. 즉, 힘을 써야 할 허리와 하체가 약하다. 이들은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의 연봉”을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장 생산성이 왕성한 이 그룹에 대하여 사기를 저하시키는 제도가 도입된다면, 대학 교육과 연구의 질적 향상에 적지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현 임시세칙에 의하면 연구비 간접경비 비율(overhead portion)이 70%, 매스컴 보도 등 기타가 30%로서, 연구비 수주실적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 포항공대에서 이러한 평가는 당연한 측면이 있으며, 기존 학과에서 실시한 연봉제 평가에서도 그 점이 반영된 바 있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연구비 지원방침이 신성장 동력분야(즉 IT, NT, BT 등 xT)에 집중되어 대형화되고 있는 반면에, 종래의 개인 위주의 연구과제는 액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BK21의 지원이 종료되는 내후년 초에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공과대학으로서의 장기적 경쟁력을 생각할 때, 기초과학과 비xT공학 분야에서의 교육 및 연구가 결코 등한시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라서 차제에 학과 및 학교의 성과급 평가를 절충 내지 일원화할 필요가 있으며, 그 평가항목 및 가중치 그리고 적용액수가 학과의 특성과 환경에 맞게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본 제도의 시행에 있어서 부정적 측면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 처음 지급된 성과급을 바라보는 교수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지금이야 “왜 나는 없느냐 또는 적으냐”는 불평에 그칠 수 있지만, 수년 후를 생각해 보면 이것은 사기저하나 감정적 문제를 벗어나 안정적인 생활설계의 문제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균열된 정서와 미래에 대한 불안은 교수들이 성실하게 교육과 연구의 장에 임하는데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요컨대 소수를 스타로 만들어 얻는 득보다는 교수들 간의 균열과 사기저하로 잃게 되는 실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과급 차등화 제도가 학과의 몇몇 교수를 키우는 것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포항공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윈윈 정책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직도 논의의 여지가 있다면, 제도의 목적을 재정립하며 그 내용과 시행세칙에 있어 보다 시간을 두고 심도있는 논의가 진행되기를 바란다. 이 과정에서 각 학과 및 교수들의 의견수렴은 필수적이다. 18년 전 우리는 다함께 포항공대의 신화를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렇게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우리는 곰곰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