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모 총장의 취임 1주년을 맞이하여
박찬모 총장의 취임 1주년을 맞이하여
  • 승인 200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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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모 총장이 취임한지 이제 일년이 되었다. 올해는 또 김호길 총장이 서거한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제4대 총장 선임이 일년 반 이상 끌면서 대학 구성원들 간에 갈등과 격정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던 것이 언제였었느냐라는 듯이 지금 캠퍼스의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지난 일년 동안 박찬모 총장은 화합과 단결, 집중과 선택, 행정의 효율화, 국제화 그리고 재정 확충의 다섯 가지 공약을 내걸고, 대학의 안정, 교수들 간의 화합, 재단과의 관계 개선, 자금 확보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 왔다. ‘봉사하는 자세로서 열심히 뛰어 보자’는 박찬모 총장의 철학이 이전과는 다른 좀더 적극적이고 협조적인 본부 보직자들의 업무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대학을 빠르게 안정시켰다.

자금 확보 측면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즉 누리사업 44억원, 나노집적사업 1,020억원을 확보했고, 제4세대 가속기 건설 사업비로 1,000억원의 유치를 약속받았다. 이로 인하여 연구 역량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고, 교육기반을 다질 수 기틀을 마련했다.

교육분야에 있어서도, 아직 대학원생의 질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학부생들의 경우 우수한 학생들이 포항공대를 선호하는 추세가 점점 더 강화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특히 올해는 국제물리올림피아드가 포항에서 개최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포항공대 가속기연구소를 방문하고, 대구·경북지역 혁신토론회 모임을 지곡회관에서 열게 된 것은, 국내외 특히 중앙 및 지방정부 지도자들에게 포항공대가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확실히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일년 동안 박찬모 총장은 취임시의 불안을 극복하고 대학이 안정적이며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수의 교수들은 일상적 대학운영이 안정된 것에 대하여 다행스럽게 여기면서도 이러한 안정 속에 안주하려는 현 상황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무엇이 이 겉으로 보이는 안정 속에 가려져 있는 것일까? 그것은 포항공대가 진작 시도했어야 할 변화를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겉으로 점진적 발전처럼 보이는 안정 속에 숨겨져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오래 전에 제2의 도약을 위하여 어느 방향으로든 포항공대가 뛰었어야 하는데, 뛸 방향을 잃어버렸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실질적으로 대학이 야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거나, 해온 전략도 포장과 실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많다. 김호길 박사 이후 모든 총장들이 제2의 도약, 세계적인 연구중심 대학을 외쳐 왔지만, 사실상 구호뿐인 제자리 뛰기였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0년간을 돌이켜 보면, 포항공대는 김호길 박사의 정신적 유산의 후광 속에 견디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대학이 설립될 당시, 포항공대는 국내 유일의 연구중심 교육기관을 지방도시에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대학 초창기의 구성원들은 김호길 박사의 인품과 그가 지녔던 한국 과학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신념에 감화되어 포항공대를 만드는데 희생을 무릅쓰고 기꺼이 동참을 하였다. 집단을 감동시켜 그들의 숨은 잠재력을 끌어내고 새로운 기적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지도자, 포항공대 구성원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이러한 지도자를 그리고 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기적을 포항공대에서 이루어보고 싶다는 기대감이 총장에게 있었기 때문에 총장 선임과정에서 그런 진통을 겪었다고 할 수 있다.

올해 KAIST는 노벨상 수상자 러플린 교수를 총장으로 영입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20여년 이상 정체된 KAIST에 새로운 변화를 유도하고 이를 국가 경쟁력으로 발전시키려면, 이러한 극적인 방법 외에는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한국과학계에서는 이를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변화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지만, 우리 포항공대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KAIST 변화에 주 역할을 한 것이 경직된 과기부 관료들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KAIST에 대한 과기부의 역할은 우리에게는 재단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 KAIST의 외국인 총장 선임은 자금을 쥐고 있는 재단의 의지와 노력이 대학 발전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그동안 우리 재단이 포항공대에 대하여 수동적인 역할만을 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재단 내에 다음 단계의 대학 발전에 대한 전망과 전략적 사고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과감한 발상을 감히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해외대학 벤치마킹 조사토론회 같은 것들이 재단에서 시작되는 것 같은데, 대학을 이해하려는 이런 노력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왜 포항공대의 발전이 생각보다 더디고, 포항공대가 스스로 꽂아놓았던 약속의 말뚝을 5년, 10년 뒤로 옮겨 가면서, 비슷한 공약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재단이 차분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포항공대는 진정한 의미에서 제2의 도약을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많은 자원과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도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단에서부터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도약을 이루려는 비전이 재단에서 먼저 그려져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발전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을 대학에 요구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재단이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와 도움은 여느 사립 대학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간섭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런 후 포항공대의 잃어버린 지난 10년을 위하여, 이런 새로운 변화의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지도자를 국내외를 망라하여 폭넓게 찾아야 한다. 미국, 일본, 중국이 두려워 할 수 있는 과학도와 그런 연구결과를 배출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 수 있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 변화의 방향과 강도는 재단과 총장만이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찬모 총장의 취임 일년은 비교적 성공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보직자들의 조심스러운 대학운영 자세에 대하여도 대학 구성원들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포항공대의 진정한 발전을 이루어낼 수 없다. 대학 구성원들은 도약을 가져올 수 있는 좀더 뚜렷한 방향설정, 구체적이고 실현가능성이 있는 전략, 그리고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지난 일 년의 안정을 바탕으로, 총장과 재단은 포항공대의 진정한 도약에 과감히 앞장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