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 신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포항공대 신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 승인 200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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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은 김호길 포항공과대학교 초대 총장이 서거하신지 벌써 10주년이 되는 달이다.

화사한 봄볕을 받아 온갖 꽃들이 만발한 교정에는 포항공대의 교기가 맑게 열린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나부끼고 있으며, 그 기상은 개교 이래 포항공대가 지금도 김호길 박사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하고자 하는 강한 몸짓과도 같다.
지난 10년 동안 포항공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또한 많은 후학들이 거쳐나가 과학기술의 현장에서 미래의 주역으로 성장하고 있다.

김호길 박사는 한국 과학기술계의 거목이었다. 그는 지난 1985년 포항공대의 초대 학장으로 부임하여 9년의 재임기간 동안 포항공대를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발전시킨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만 나라가 산다는 강한 신념과 철학을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학교육을 ‘교육중심’에서 ‘연구중심’으로 개혁하지 않고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포항공대를 모델로 하여 전국의 대학교육을 개혁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1988년 김호길 총장이 순수한 우리의 기술로 포항가속기연구소를 설계, 건설한다고 발표했을 때, 관계나 학계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무리한 사업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김호길 총장은 그 특유의 추진력과 뚝심으로 밀고 나가 방사광가속기 건설을 성공적으로 완성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포항에 ‘빛의 기적’이 이루어지던 날에는 유명을 달리하였으나 포항방사광가속기는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김호길 박사의 관심은 과학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인문 사회과학 분야에도 해박한 지식을 겸비한 선비였다. 전통 유학(儒學)에 남달리 조예가 깊었고 우리 선현(先賢)들과 명유(名儒)들의 학문과 행적에 대하여 항상 공부하며 실천하는 자세로 살았다.

김호길 박사는 우리의 전통사상을 자긍심을 갖고 온전히 보유하고 있을 때만이 서양의 앞선 과학문명을 우리의 복지를 위하여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김호길 박사는 우리사회가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 미풍양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우리 사회에 건실한 도덕성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1987년에 ‘박약회(博約會)’란 조직을 결성하였다. ‘박약(博約)’이란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로서 ‘박학어문 약지이례 (博學於文 約之以禮)’에서 따온 것으로서 ‘학문은 널리 배우되 요약하여 예로서 행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그가 시작한 이 도덕성 운동이 해를 거듭할수록 동참하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금은 전국적인 조직으로 발전하여 많은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 시대가 참으로 요구했던 한 선비는 막중했던 소임을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열정적으로 수행하다 홀연히 떠났다.

김호길 총장은 그가 꿈꾸어온 현대판 도산서원인 포항공대에서 그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으며, 포항공대는 이 나라 과학기술교육의 견인차가 되어 미래 한국을 열어갈 인재들의 요람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를 향한 그의 원대한 구상은 아직 미완성으로 우리들에게 남겨져 있다.

그 동안 우리대학은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겪으며 꾸준히 발전해 왔다. 그러나 김호길 박사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그 동안의 노력이 과연 개교 당시 품었던 원대한 꿈에 걸맞게 성장 발전해 왔느냐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대학이 설립된지도 얼마 안 있어 벌써 2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그 동안 김호길 박사가 씨를 뿌리고 우리들이 가꾸어온 포항공대에는 남들과 확연히 다른 ‘포항공대의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가?

이제 김호길 박사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가르침이 후학들의 귀감이 되고 그의 사상과 철학이 포항공대의 전통 속에 면면히 이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스스로 포항공대의 전통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얘기할 수 있을 때 원대한 포부를 가진 젊은 영재들이 끊임없이 모여 들어 세상을 향한 그들의 꿈을 펼쳐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제2, 제3의 김호길이 나와 포항공대의 신화를 계속 이어 나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