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자
대학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자
  • 승인 2000.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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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회가 혼탁하더라도 대학만큼은 깨끗하고 투명하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인들이 갖는 정서이다. 최고 교육기관으로서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대학이 흔들리면 그 사회와 국가의 미래 또한 암담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만들고자 하는 포항공대의 경우 그 설립과 운영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었고 우수한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 있는 만큼, 사회에서 거는 기대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대학의 인사행정과 물품구매 과정을 둘러싸고 몇가지 의혹들이 제기되면서 학내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과 자조의 한탄이 나오고 있다.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투명하게 처리되어야 할 사안들에 대하여 의혹이 제기되고, 그 가운데 일부는 사실로서 확인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실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드러난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면, 첫째 교수들의 정년보장 심사와 특정학부의 교수인선에 있어 학칙에 명시된 규정과 절차를 생략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함으로써 대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야 할 교수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둘째, 물품구매에 있어 공개입찰이 아니라 수의계약이 관행처럼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견제와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셋째, 구매행정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다음에 복지회의 사과와 기획처의 자체감사 결과가 발표되기는 했으나 아직까지도 대학 구성원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대학본부는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들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빠른 시일 내에 성의있게 조사하여 그 결과를 최대한 공개해야만 한다. 그리고 실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 그 담당부서와 책임자에 대해서는 합당한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 한점의 의혹도 남겨서는 안되며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혹 불미스러운 일을 공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게 할 때만이 학내의 불신을 해소하여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삼고 대외적으로도 떳떳해질 수 있다.

아울러 우리는 이 기회에 대학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들을 다각도로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대학본부 뿐만 아니라 교수와 직원 그리고 학생들을 대표하고 또 그들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기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학교는 지나치게 많은 권한과 책임이 대학본부에 집중되면서 의사결정에 있어 적지않은 문제점을 노출시켜 왔다. 초창기에는 그것이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 구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따라서 대학본부에서는 교수평의회, 직원노동조합과 직장발전협의회, 총학생회 또는 학과학생활동협의회와 같은 단체들을 그저 형식적이거나 임의적인 자치기구로서 귀찮은 존재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화창구로 인정하고 대학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어야만 한다. 모든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풀어간다는 결연한 각오로 시작할 때에만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으며 침체된 대학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문제를 우회적으로 또 임기응변적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대학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응집되어야 할 에너지는 분산되어 대학발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교수와 직원 및 학생들도 자신들의 대표기구가 제대로 자리잡고 활동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성원해 주어야만 한다. 그동안 각 대표기구들의 활동이 위축되었던 데에는 대학본부측의 부정적 시각과 태도 못지않게 구성원들의 소극적이며 방관적 자세가 크게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교수평의회의 경우 평의원들의 참석율이 저조하여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으며, 총학생회는 회장단 입후보자가 없어 이번 학기에는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학 의사결정이 본부로 집중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합리적이고 투명한 행정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대학도 하나의 사회인만큼, 내부적으로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구성원들의 참여가 있어야만 맑고 깨끗해질 수 있다.

연구와 교육에서 뿐만 아니라 대학행정에 있어서도 포항공대는 다른 대학의 모델이 되어야만 하며, 또 그럴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다. 지금까지의 위에서부터 밑으로가 아니라, 밑에서부터 위로의 열린 행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각 구성원들의 의견을 효율적으로 수렴하여 대학행정에 반영할 수 있는 자치기구들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럴 때에 폐쇄적인 대학운영에서 파생되었던 여러가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서로의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진정한 의미의 대학발전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