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포항공대
기로에 선 포항공대
  • 승인 2003.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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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가 설립되는 과정은 하나의 역사 드라마와 같았다. 1985년 6월 15일 포철 주택단지 내 영빈관인 백록대에서 박태준 당시 포철 회장은 대학 건설에 자문을 위해 한 인물을 만나고 있었다. 그는 만난 지 한시간도 되지 않아 자신이 건설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대학을 맡을 사람으로 김호길 당시 연암공전 학장이 적임자라고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백록대 면담에서 김호길 박사는 박태준 회장에게 학교 운영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재단이 간섭하지 말 것과 학교를 위해서 돈과 시설이 필요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포항제철이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말을 듣고 박태준 회장은 만약 그것이 불필요한 것만 아니라면 언제라도 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이 약속은 연구중심대학 포항공대의 출현으로 실제로 실현되었다.

우리 대학 설립 직후에 있었던 최초의 신입생 모집 과정 역시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1986년 당시 김호길 학장은 자연계 지원자의 2.4% 이내에 해당하는 280점을 지원자격으로 내세우는 일대 모험을 감행하며 포항공대 신입생 모집을 추진하였다. 수많은 회의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1987년 1월 8일 첫 신입생 모집을 위한 원서 접수 마감 결과 9개 학과 249명 모집에 총 543명이 지원하여 평균 2.18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학력고사 300점 이상 지원자가 94명이 되는 결과가 나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 연출되었다. 더욱이 합격자 사정 결과 신입생들의 평균 커트라인은 296.3점이었고, 합격자의 평균 점수가 300.6점에 달하여 포항공대는 개교와 함께 우수학생 모집에 성공하였다.

드라마와 같은 초창기의 이야기와는 달리 개교 17주년을 맞은 지금의 포항공대 구성원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재단과 학교와의 관계도 예전과 같지 않고, 대학이 구체적인 전략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마당에 대학 보직자들과 대학 교수를 비롯한 대학 구성원 사이의 화합과 재단, 대학, 포스코와의 관계 개선을 대학 정책에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판이다. 그토록 바라는 과학 분야의 노벨상은 기약이 없고 국내 1위를 고수하기도 힘에 벅차다.

개교 20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현 상황에서 우리는 이제 이런 답답한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동력을 찾을 때가 되었다. 그동안 포항공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포스코의 동력을 기본으로 하고, 국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 및 연구개발 전략, 그리고 지역혁신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삼아 포항공대를 새롭게 재편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수요자 중심으로 교과과정을 새롭게 개편하고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지방분권 정신에 입각해서 지역혁신을 위한 연구 전략도 다시 마련해야 한다.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지도자적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방향으로 교과과정을 새롭게 개편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리더십 육성 프로그램을 학교적인 차원에서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

국가적 차원이나 지역적 차원에서 신산학연 파트너십을 형성시키고, 내부 혁신에 주로 의존하던 포스코의 혁신에너지를 지역혁신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산ㆍ학ㆍ연ㆍ관ㆍ민의 새로운 네크워크를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지금은 인화나 화합 차원의 소극적인 대학 분위기 혁신만이 아니라 새로운 국내외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대학 전략이 시급히 요구되는 때이다. 개교 20주년을 바라보면서 대학 구성원 모두의 각성과 함께 대학 당국의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