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자
지방분권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자
  • 승인 2003.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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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극심한 수도권 집중화로 야기되고 있는 엄청난 폐해로 신음하고 있다. 수도권에 84%의 공공기관이 모여 있고, 수도권-대전의 과학기술 연구비가 전체의 75%가 되는 엄청난 지역 편중 현상은 전 세계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수한 연구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단지 지방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각종 연구지원 사업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으며, 이미 나노팹 유치 경쟁에서 우리 대학이 통감했듯이 국가적 거대 연구시설은 단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방 유치가 묵살되기 일쑤이다.

애초에 지방분권 논의는 낙후된 지방의 발전을 갈구하는 지역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학문적인 차원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지방분권 및 국가 균형발전을 주요 국정 과제로 제시하면서 지방 분권과 국가 균형발전의 움직임은 더욱 강한 급류를 타고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미 장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실무작업에 들어갔다.

국가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국가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이미 지방 균형 발전이 나눠먹기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데에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시대의 흐름이 중앙 집중에서 지역 분산의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대량 살상 전쟁이 끊이지 않던 20세기가 중앙집권화, 권위주의 1인 통치방식, 대량생산, 획일화, 집중화로 상징된다면, 21세기는 지방분권화, 대화형 통치, 유연생산방식, 개성추구, 분산화로 대변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 왔다.

현재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는 지역혁신체계의 구축을 위한 지역혁신협의체의 이상적인 모형을 제시하기 위해 다각도로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그 동안 전국에 진행된 테크노파크와 같은 지역 혁신 모형에서는 주로 관(官) 주도형이 태반이었고, 대학이나 기업체 인력이 보완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기존의 지역혁신 구조는 주로 광역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포항지역과 같은 시군 단위에 있는 경우 이런 혁신 구조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었다. 포항지역에 이미 우수한 인적·물적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으며, 우리 대학이 스스로 테크노파크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역 단위의 테크노파크 사업은 대구에 인접한 경산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포항의 테크노파크 사업도 철저하게 관 주도형으로 변질되고 있다.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을 추구하는 우리 대학은 그동안 수준 높은 연구 성과를 내면서 국가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많은 기여를 해왔다. 우리 대학은 세계적인 연구 업적을 발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에서 나온 연구 성과의 산업화를 촉진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포항의 주력 산업인 기존의 철강 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물론 포스트 철강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지역혁신 구조를 만드는 데에도 포항공대는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포항공대는 지방에 있지만 ‘지방대학’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왔고, 우리 대학 구성원들도 이런 외부의 평가에 대해 은연중 자부심을 지닌 바도 없지 않았다. 더욱이 정부부처에서는 카이스트나 포항공대는 이번의 국가균형발전 계획이나 지방대 육성 계획에서 제외시키려는 경향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지방에서 악전고투하며 오늘의 포항공대를 이룬 역군들의 풍부한 경험과 능력을 국가의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업 달성을 위해 활용해야 할 때가 되었다.

현재 대전의 대덕밸리과 인천의 송도테크노파크는 정부의 IT 산업 육성 계획을 놓고 치열한 유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 과제인 “국가균형발전”과 “동북아경제교류중심”이라는 두 과제 사이의 싸움이며, 정부 부처 내부에서는 산업자원부와 재정경제부와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어느 쪽 손을 들어주더라도 수도권과 대전의 과학기술 연구개발비 집중도는 75%를 넘어 지역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국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시대에도 ‘있는 집이 더 무섭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이다.

세상이 이렇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항공대만이 이런 시대적 변화에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대학은 국토의 동남부의 작은 지방도시에 위치하여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불이익을 받아왔다. 이제 이런 지역적 약점을 거꾸로 이용해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