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문제 해결에 산업계도 동참하라
이공계 기피문제 해결에 산업계도 동참하라
  • 승인 2003.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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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출범한 참여정부는 4대 국정 운영과제의 하나로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을 내걸고 과학기술을 과거의 부수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이제는 국가경영의 중심에 세울 것을 천명하였다. 우리는 이것이 미래의 지식기반사회에서 계속적인 국가 발전을 위해서 당연히 필요하고 시의 적절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며, 구호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로 구체적으로 실천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 새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펼쳐야 할 정책은 현재 만연되고 있는 망국적인 이공계 기피문제의 해결이라고 믿는다.

1996년만 하더라도 42.6%를 차지하던 이공계열 수학능력시험 응시자는 매년 줄어들어 2002년에는 26.9%에 이르렀다. 그나마 이 중에서도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대학의 이공계 학과를 외면하고 의대, 한의대, 치대에 몰리기 시작하더니 작년에는 약대에까지 몰려 이러한 학과들은 넘쳐나는 지원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반면,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국가산업의 동량이 될 인재를 양성하는 이공계 학과는 정원을 채우기도 급급한 실정이었다. 전통적으로 전국 최고 대학의 명성을 유지해 오던 서울대마저도 이공계 학과는 2년 연속 등록 미달을 경험하였으며, 복수 합격한 수험생의 경우 소위 ‘묻지마 의대’라는 거센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여,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 소재 의대에까지 합격생을 빼앗기고 있다. 이 대학의 상당히 많은 우수한 이공계 대학생들은 본인의 전공을 무시하고 고시학원에서 밤을 지새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우리 대학은 아직 이러한 세파의 영향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언제까지나 이 바람에서 비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망국적인 이공계 기피 문제에 대해 정부는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이공계 졸업생의 공직 채용 확대, 기술고시 확대, 병역특례 확대, 장학금 지급 등 비록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처방이라는 비난이 있고, 또 그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인 위기의식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산업계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공계 기피가 심화되어 우리의 우수한 젊은 인재들이 산업계로 오지 않고 모두 의사, 법관, 약사가 되겠다고 하면, 장기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산업계가 아니겠는가? 정부와 사회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는 하지만 산업계 스스로 어떻게 하겠다는 대책은 들리지 않는다. 대학에 대해서는 산업체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자를 양성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이 과연 이공계 기피해소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기피가 심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 체제하의 경제대란 때 많은 회사들이 기술직, 연구직 직원들을 대거 정리해고 하였고, 국책연구기관에서도 많은 연구원들을 내보내면서부터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문제는 선진 외국에서 보듯이 소득과 삶의 질이 상승되면서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싫어하고 개인의 안위를 최우선 하여 직업을 선택하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이공계 기피와는 그 심각성과 시급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6~70년대부터 이공계는 높은 취업률,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와 고용의 안정성으로 인하여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하였고 또한 사회적인 인식과 자긍심도 높았다. 정부도 앞장서서 우수인력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우대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점점 대우와 사회적인 인식이 낮아져 오다가 IMF 사태 하에서의 대량해고는 결정적으로 고용의 안정성마저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어 과학기술자들 스스로가 본인의 자녀들은 과학기술자를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회 풍조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렇다 할 부존자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40년간 우리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이 핵심 원동력이 우수한 이공계 인력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진입하고 있는 지식기반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수만, 수십만을 먹여 살리는 시대이기 때문에 과거의 산업화시기보다도 훨씬 더 우수한 이공계 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공계 인력은 국가 경쟁력 뿐만 아니라 기업경쟁력의 핵심이다. 한 사람의 뛰어난 과학기술자를 확보한 회사가 다른 회사보다 먼저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 이공계 기피현상이 지속된다면 이러한 우수한 인력의 확보는 고사하고, IT, BT, NT 등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 분야에서는 필요한 인원 수마저도 채울 수가 없다고 한다. 유일한 희망인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마저 공동화가 된다면 우리의 성장엔진은 전무한 셈이고,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 산업계는 이 망국적 이공계 기피문제의 해결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나 대학에만 문제 해결을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이공계 기피문제 해결의 요체는 간단하다. 과학기술자가 되는 것이 의사나 판사가 되는 것보다 더욱 대접받고, 안정된 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면 자연스럽게 가장 우수한 젊은이들이 앞 다투어 과학기술자가 될 것이다. 이를 직접 실행할 수 있는 주체는 과학기술자를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는 산업계이다. 당장의 경제적 논리에 의하여 단기적인 인사관리를 하지 말고, 자기 선배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나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주시하고 있는 미래의 과학기술자들을 의식해서라도 이공계 인력을 획기적으로 우대하는 인사관리 시스템의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많은 우리 기업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인력과 학교를 졸업하고 곧 새로 들어오는 인력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회사의 미래가 앞으로 들어올 다음 세대의 인력에 달려있다면, 그들까지 확보하는 먼 안목의 인사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전제 하에서 정부, 교육기관들과의 공동대응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