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새 바람을 일으키자
캠퍼스에 새 바람을 일으키자
  • 승인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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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효자 언덕 포항공대 캠퍼스가 3월이 되면서 활기가 넘치는 것 같다. 학부 신입생 303명을 비롯한 총 900여명의 새 식구들을 맞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03학번으로 불리는 303명이 가져 온 젊은 에너지는 학교를 환하게 만드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매년 3월초와 8월말에 학기가 시작하기는 마찬가지지만 3월의 감동이 보다 큰 이유는 새내기들의 활력이 전 교정에 확산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간 여러 차례 새내기들을 받아들였지만 금년 03학번의 활력이 더욱 와닿는 것은 지난 8월 이후 약 반년 동안 우리 포항공대인들이 약간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보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포항공대 제 2의 도약을 이끌어 줄 새 총장의 선임이 지연되었기 때문은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그러나 지난 반년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이었고 우리 자신의 저력에 놀란 기회의 시간이었다. 중앙일보에서 발표한 대학 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하였고, 이번 새내기 03학번을 최고 수준의 인재들로 유치하는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이 기쁜 3월, 우리의 밝은 면을 들여다보자.

우리가 제 2의 도약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잘못된 이야기 같다. 제 2의 도약은 제 1의 도약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해 다시 한번 시도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포항공대에 제 2의 도약은 필요 없다. 개교 이래 포항공대는 계량화 될 수 있는 지표적 성장(measure based growth)에 있어 완벽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교수 대 학생비율, 신입생들의 평균 수능점수, 교수 1인당 또는 대학원생 1인당 논문 수 등등. 세계 최고의 대학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성장을 이루었고 이를 추구한 첫 번째 도약은 대단한 성공이었다. 이러한 성공을 통해 국내에서는 최초로 세계적 명문이 되는 필요조건을 만족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충분조건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성공적인 phase transition(상변환)이라고 생각된다. 지표적 성장으로부터 창의성에 바탕을 둔 질적 성장(quality based growth) 단계로의 전환이다. 지표적 관점에서 최고의 위치에 도달한 학교끼리, 즉 최고 명문이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을 만족한 학교끼리 충분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진검승부’를 겨루는 새로운 경쟁세계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phase transition은 우리 학교에서 이미 시작되어 진행되고 있으나 여러 면에서 새로운 도전이 요구되고 있다.

첫째는 국내에서는 아무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것을 개척해야 하는 어려움이다. 어찌 보면 이와 같이 성장해 버린 우리의 위치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임 하의 포항공대를 이끌 새 총장을 모시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둘째는 우리 스스로 마음이 약해지는데서 오는 불안감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지표 지향적 성장 단계에서는 투자한 노력이 특정 지표로 가시화 될 수 있었고, 이런 성취들에서 얻는 성장속도감은 대단한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관성에 의해 모르는 사이에 속도감을 추구하게 되는데,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는 그런 느낌을 별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가 낙후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이 지난 반년간의 정황과 맞물리면서 캠퍼스의 분위기가 약간 가라앉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연의 섭리로부터 지혜를 얻어 보자. 액체 상태의 물을 기체 상태로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온도가 변화하지 않는 상태에서 충분한 양의 잠열(latent heat)이 공급되어야만 비로소 기체상태로 바뀌지 않는가. 온도 상승이라는 지표에는 전혀 기여를 못한 잠열이지만 일단 기체화된 물 분자가 액체 상태와는 완전히 다른 폭발적인 운동에너지를 갖도록 하는 일등공신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쏟고 있는 노력은 바로 특정 지표의 향상으로 나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이러한 노력은 머지않아 새로운 패러다임하의 포항공대인들에게 폭발적인 에너지를 공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물 분자지만 액체 상태와 기체 상태의 분자들의 활동도는 매우 다르다. 개교 이래 성공적인 첫 번째 도약에 통해 섭씨 100도라는 최고수준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도달했고 지금은 기체 상태의 물 분자로 변환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투입하고 있는 시기로 생각하자. 머지않아 기체 상태로의 변환은 완성될 것이며 포항공대의 발전은 계속될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하의 포항공대인은 기체 분자들과 같이 제약 조건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자유로운 사고와 지적 활동으로 소수의 창조자(creative minority)들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곳 효자 동산에 활력을 가져온 신입생들과 함께 캠퍼스 분위기를 일신시키고 나아가서 포항공대의 새로운 도전의 역사를 바로 우리가 만들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