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창조자가 되라
소수의 창조자가 되라
  • 승인 2003.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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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속에서 움트는 새로운 생명력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그리고 이맘 때면 대학은 그들이 정성들여 길러온 인재들을 배출한다. 포항공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캠퍼스가 떠뜰썩한 다른 대학들과 달리 우리 대학의 졸업식 행사는 간소하고, 어찌 보면 조금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다. 졸업생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정든 캠퍼스를 떠나는 졸업생은 지난해 8월의 후기 졸업자까지 포함하여 학사 214명, 석사 382명, 박사 115명으로 모두 합하여 711명이다. 숫자만을 따진다면, 서울의 규모가 큰 종합대학들의 10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포항공대 출신들은 사회의 각계 각 부문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만큼 소수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에서 남다른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세기의 문명사가인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소수의 창조자’(creative minority)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물론 이론(異論)과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한가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어떤 집단이나 사회가 역동적인 생명력을 갖고 지속적인 발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미래에의 투시력과 창조력을 지닌 지도자들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이다.

포항공대의 졸업생들은 그들이 활동하는 분야에서 소수의 창조적 역할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몇가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문성이다. 졸업하는 시점에서만 본다면, 우리 대학의 졸업생들은 그들의 전공분야에 대한 실력에 있어 다른 어느 대학에 비교하더라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감히 자부한다. 문제는 졸업한 이후에도 자신이 활동하는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맞추어 자신의 실력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학 졸업은 새로운 시작일 뿐 인격이나 지식에 있어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는 미래에의 비전을 갖고 자신이 소속된 집단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이 없다면 소수의 창조자라고 할 수 없다. 특히 21세기의 인류는 미래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 또는 2001년만 해도 전세계는 떠들썩했다. 새 천년을 맞이하는 희망과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모두들 불안해하고 있다. 그것을 딱히 전쟁이나 테러, 또는 경기침체와 같은 요인으로만 그 이유를 돌릴 수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인류가 공통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와 공유해야 할 가치관을 갖고 있지 못한 때문이다. 따라서 크든 작든 한 집단에서 현재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서로를 파편화하지 않고 하나의 공동체로 끌어안을 수 있는 지도력과 포용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함께 추구해야 할 목표와 방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한 집단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에게는 엄격한 자기절제와 도덕심그리고 헌신성이 요구된다. 이것이 없다면, 그는 구성원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최근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에서의 인사청문회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가 지도층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솔선수범이다. 국민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병역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부터 다하라는 것이 그들의 소박한 요구이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의무 뿐만 아니라 보다 높은 수준에서의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엘리트 의식에 수반되는 특권의식을 과감하게 배격할 수 있을 때, 그리고 겸허하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그는 자기가 소속한 집단으로부터 진정 환영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소수의 창조자가 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외로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존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한단계 발전시켜 나가려 하는 데에서 자신도 모르는 창조력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졸업생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늘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