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꿈은 이루어져야만 한다
우리들의 꿈은 이루어져야만 한다
  • 승인 2002.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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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벌써 11월이다. 교정 이곳 저곳의 나무들도 늦가을의 깊은 정취 속에서 낙엽을 떨구고 있다. 한 해를 보내는 11월이 오면 사람들은 지난 한 해를 돌이키며 회상에 잠기곤 한다. 올해 우리에게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나.

지난 봄을 기억하는가. 모든 국민들은 걱정과 우려 속에서 월드컵이라는 잔치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경기장 시설의 미진함을 지적하고, 매스컴에서는 무질서한 교통질서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면서, 우리는 잔치상을 준비하는 곳에서 볼 수 있는 흥분과 설레임보다는 시험을 앞둔 열등생의 초조함 속에서 답답한 봄을 보내고 있었다. 해외 전지 훈련 중의 축구 대표팀의 성적은 ‘5:0’이라는 상징어 속에서 향상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매스컴에서는 연일 공동 개최국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국민들의 협조와 분발을 촉구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서, 더욱 더 우리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조 추첨이 있던 날, 우리의 걱정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16강은 커녕, 1승도 힘들 것 같은 조 편성. 힘들게 가져온 공동개최. 16강에 들지 못하는 최초의 개최국이 될 거라는 우울한 예측 속에서 2002년의 봄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6월, 환희와 승리의 6월. 우리는 이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말끔히 날려보냈다. 온 국민들은 길거리로 뛰어나왔고, 함께 소리치고, 함께 승리의 환호를 외쳤다. 첫 승을 이룬 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포르투갈을 꺾던 날,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700만의 질서있고 열광적인 응원은 전 세계인들에게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게 되었고, 드라마 같은 16강전과 8강전, 그리고 세계 4강. 더 이상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었다. 성숙하고 여유로운 주체국이었고, 강자였다. 그리고 승리자였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마음 속 깊이 되새겨 주었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2002년 가을, 우리는 다시 지난 봄의 초조함과 높은 벽을 다시 연출해야만 했다. 그리고 막연한 시샘과 부러움 속에 빠져들었다. 매년 10월이면 날아드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 소식. 올해도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물리 부문 수상자는 대학을 꼴찌로 졸업했는데, 75세의 나이로 수상하는 인간 드라마를 연출하였고, 화학 부문 수상자는 전기공학 전공 학사 출신의 중소기업 연구원이라고 한다. 1987년 28세의 나이에 수행했던 연구의 결과였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지는 또 하나의 월드컵 16강이고, 월드컵 4강이다. 이 답답함과 초조함을 우리는 누구에게 하소연 해야 하나.

개교한 지 15년의 우리 포항공대가 그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지며, 5:0으로 참패했던 축구 대표팀과 같이 고개를 수그릴 직접적 이유는 없겠지만, 새롭게 대표팀에 차출되었던 신예의 선수와 같이 우리의 어깨는 무겁기만 하다. 그리고 그 책임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적 소명의식을 우리 모두 가져야 한다. 우리대학의 존재 이유가 일개 우수한 사립 공과대학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상기하자. 노벨 과학상 수상의 주역이 아니어도 좋다. 그런 환경과 토대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산파역이 되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6월 우리는 새롭게 발탁된 놀라운 신예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었다. 이제 우리가 그 환호의 주인공이 되자. 도서관 앞의 동상에 내 얼굴을 올려놓자. 자, 다시 일어나자. 15년 전, 우리는 최초의 연구 중심 대학으로 이 땅에 신기원을 수립했었다. 신발끈을 동여매고, 허리띠를 조이자. 어수선하게 흐트러졌던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서자. 자!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어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