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극복과 과학인의 사명
수해 극복과 과학인의 사명
  • 승인 2002.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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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여름은 두 차례에 걸쳐 강력한 태풍으로 인해 잠정집계 7조가 넘는 유사 이래 가장 큰 재산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우리 대학에서도 한 학생의 부모가 급류에 휩쓸려 모두 생명을 잃는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는 이번 태풍의 강도와 빈도로 말미암아 불가항력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점차 훼손되어 가는 자연환경과 난개발로 인해 그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과 반성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편으로는 나노 크기의 로봇을 개발하고 유전자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첨단과학시대를 사는 우리들이지만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는 한낱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현실에 무력감도 들기도 한다. 따라서 첨단과학의 발전과 함께 국민과 함께 하는 일반 과학적인 수준도 높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여름에 두 차례의 수해를 겪으면서 일부 피해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인 것으로 의심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들은 보통 설마 하는 습관에 많이 젖어있기 때문에, 첨단과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요즘도 많이 쓰고 있는 것이다. 수해와 같은 자연재해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대처하는 기상청, 환경부 등의 부서는 재경부 등의 타 부처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곳이고 그나마 그곳에도 중요한 정책결정을 하는 고위직일수록 과학과 공학을 전공한 공무원보다는 인문계 출신이 다수를 점유하고 있다. 이공계 공무원의 경우에도 소위 일류대학 출신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국가의 중요정책이 과학적인 전문성이 결여된 채 입안되고 집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엄청난 재해를 예방하거나 극복하는데 미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진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과학역사가 매우 짧고 오래된 유교사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의 과학적인 사고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들 한다. 한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첨단을 달리는 물건들을 만들어 지구촌 곳곳에 수출을 하고 있으며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지만 전반적인 국민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은 아직 OECD 국가의 국민으로서는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주요 원인의 하나는 우리나라의 권력층이 대부분 상, 법대 출신이며 장관, 국회의원의 대다수도 이러한 계층으로 이공계 출신을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실제 국민생활과 관련이 깊은 주요 정부부처 관리들도 대부분 인문계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 분야와 생산현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관리하는 체계는 매우 비과학적인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과학도들이 해야 할 일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전문지식을 갈고 닦는 일과 함께 과학전반에 대한 소양과 사회참여에 대한 인식도 같이 키워나가야 하겠다. 외국의 경우 대학이나 대학원 시절에 전공과목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과학전반에 대한 상식을 넓히기 위해 전공서적이외에 다양한 과학 및 사회서적을 탐독하여 일반 과학적인 상식을 넓힘과 동시에 창의력을 키우고 아이디어를 개발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초등학교부터의 주입식 교육과 입시지옥으로 인하여 대부분 자기의 전공이외에 다른 분야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우리 대학만 하더라도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 국내외의 저명한 과학자와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각종 행사를 갖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관심을 나타내지는 않는 것 같다. 또한 각 학과마다 학기 중 매주 세미나를 개최하지만 강연자와 학생이 활발한 토의를 하는 모습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아직 타 대학에 비해 역사가 짧고 졸업생의 숫자가 적은 우리 대학의 경우 사회적인 기여도가 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소수정예를 표방하는 건학이념처럼 보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여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졸업생의 대부분이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 등에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는 현실에서 앞으로는 정치나 경제, 사회의 고른 분야에 다양하게 진출하여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소양을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기회도 넓혀나가야 하겠다. 세계적인 연구하는 대학을 지향한다고 해서 모든 졸업생이 교수나 연구자로 성공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부기관에서 중요한 정책을 수립하는 공무원도 나와야 하고 과학입법을 제대로 하는 국회의원이나 과학대중화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 언론인이나 사회운동가도 육성할 수 있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대학의 이상과 목표가 좀더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학입국만이 우리의 살길임을 굳게 믿고 있지만 그것이 기술만 개발하고 좋은 상품만 잘 만들어 수출하는 것만으로 해석되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의 과학입국이란 일상 속에서 과학적인 논리가 잘 통해 억지와 비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상식적이면서도 고도의 과학적인 시스템이 일반화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 과학도의 하나의 의무라고 생각되며 다양한 방면에서의 적극적인 사회참여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번에 엄청난 수해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부디 과학적인 지혜로 최소한의 비용과 노력으로 이를 조속히 극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