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제도 도입 추진을 환영한다
명예제도 도입 추진을 환영한다
  • 승인 200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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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총학생회가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바로 명예제도 도입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학생 스스로가 숙제를 푸는 것에서부터 시험, 기숙사 생활 등 학생 각자가 포항공대에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동안 학생 행동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 제도가 추구하고자 하는 범위는 스스로 의식을 하던 못하던 숙제를 베껴내는 일에서부터 기숙사 내에서 빨래를 하는 일까지 일상적인 모든 일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점은 이런 활동이 누구에 의한 요청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명예제도는 선진 외국 대학에서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팀이 구성되지 않은 숙제는 당연히 혼자 하는 것이고, 중간고사나 기말고사와 같은 시험은 당연히 무감독 시험이다. 특히 집에 가지고 가서 하는 소위 'take home exam'은 누가 볼 수도 없지만 당연히 스스로의 통제하에 자료를 찾고 문제를 푼다. 사실 이런 제도는 답안지 안쪽에 적혀 있는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문구에 서명하는 과정을 통하여 법적, 제도적 구성이 완성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제도가 없는가?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런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군의 장교를 배출하는 사관학교는 그들 스스로 명예를 먹고사는 집단으로 자부하기에, 모든 시험 과정에서 학생 대표가 교수로부터 시험문제를 받아가서 시험이 끝나면 스스로 답안지를 거두어 교수에게 가지고 오는 제도가 수십 년 동안 이루어지고 있다. 몇몇 종교적 색채가 강한 대학에서도 종교적 양심에 바탕을 둔 명예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사실 우리 학교도 태생적인 환경을 돌이켜본다면 명예제도는 우리 대학이 생겨날 때부터 확립되었어야할 제도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때 학교가 요구했던 것은 학생들의 정치문제 불개입을 요구하는 서약서였었다. 당시의 국내 정치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명예제도와 같은 전통을 세울 수는 있었다. 그 동안 이런 종류의 제도 확립에 뜻을 둔 교수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종류의 제도는 누구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지기보다는 학생 스스로에 의해 완성된다면 그 또한 대단한 파급효과를 줄 수 있다.

하지만 명예제도는 무감독 시험 정도로만 해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학생들 스스로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듯이 포스비에 게시되는 한심할 정도의 방만한 생활양식 역시 명예제도를 통하여 정리되었으면 한다. 우리 학교의 특성 중 하나가 모든 학생이 교내에서 생활하는 점이다. 집에서 부모님의 도움 아래 하는 생활과는 달리 최소한의 공중도덕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개인주의를 넘어 안하무인격의 사생활로 다른 이들의 지탄이 포스비를 도배하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 명예제도를 준비하고 있는 총학생회는 학교와 적절한 상의를 통하여 이런 부류의 명예제도 '파괴자'들을 축출해낼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도출해내기를 기대한다.

학생들의 이런 활동을 보면서 학생들이 사뭇 대견스럽게 보인다. 명예제도를 제안한 점도 그렇지만 이를 공론화하여 내부 의견을 스스로 수렴해 가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지금 보여주고 있는 과정은 학생들의 사고가 한층 성숙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 더욱 가슴 뿌듯하다.

조직은 스스로 변화하기를 거부할 때부터 기울기 시작한다. 변화는 외적으로 강요될 수도 있지만 내부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변화야말로 정말 바람직한 방향이다. 우리 학교는 지금 변화의 길목에 서 있다. 작금 우리 주변에는 몇몇 퇴행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결국 대세는 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총학생회의 명예제도 공론화를 깊은 관심으로 지켜보면서 그들의 성공, 아니 우리 스스로의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