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례 공론의 장이 시급하다
정례 공론의 장이 시급하다
  • 승인 2002.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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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직이나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갈수록 다양해지면서 문제점과 해결책이 정밀한 검토와 분석에 의하지 않고는 원하는 효과를 내기보다 거꾸로 부작용에 시달리기만 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면서 효과가 긴 시간에 걸쳐 나타나는 문제일수록 그러하며, 교육이 대표적인 예의 하나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려면 많은 사람들의 객관적인 의견수렴과 조율이 필수적이다. 단기적으로는 폭넓은 의견수렴보다 소수에 의한 신속한 정책결정이 효과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졸속으로 결정된 정책을 바로 잡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며, 그 과정에서 의욕과 신뢰가 무너져 미래의 발전가능성마저 없어져 버리기 십상이다.

우리대학의 현 상황을 보면, 건전한 의견결집의 체제가 정착되어 있지 않다. 교수평의회나 학생회로부터 문제제기가 있기는 하지만 문제가 생긴 이후에 이를 지적하는 형태가 대부분이고, 대학본부를 보자면 큰 문제가 생긴 후에 마무리를 위해 간담회를 여는 경우는 있었지만, 정책수립 과정에서 사전에 의견과 아이디어를 결집하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그 결과 큰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는 설익은 정책들이 작은 효과를 위해 조급하게 추진되면서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으며, 문제가 확인된 경우에도 종합적 대책보다는 근시안적 미봉책에 급급하기 일쑤였다.

개교초기에 많은 문제들을 시급히 해결하기 위해 대학본부를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관행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필수적인 절차도 무시하고 중요정책이 결정되는 사례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지금 논란이 있는 영어강의 문제도 실은 시행되기 이전에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했으나, 조급하게 시행부터 먼저 서두르면서 뒤늦게 문제화되고 있는 것이다. 주차장과 연구원 숙소 문제를 비롯하여 부각된 문제 사례만 이미 여럿이고, 이런 예가 계속 쌓여가면서 구성원들의 불만과 의욕저하는 말할 것도 없고, 전체적인 대학운영에 미치는 부작용이 상당한 위험수위에 이르러 있다.

정책이란 사전에 최선의 방책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문제가 발생한 후에 막느라고 애를 쓰는 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다. 우리대학은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계속 다른 대학들보다 앞서가는 여러 제도들을 도입시행해야 하는데, 도입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논의가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이미 부각된 문제점의 해결뿐만 아니라 앞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는 계획의 타당성 검증 등에 대해서도 사전에 폭넓은 의견수렴을 할 수 있도록 정례화된 토론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간단히 나열해 보아도, 새로운 입시제도, 교과과정 개편, 인성/창의력 교육, 대학 운영체제의 합리화, 국제화 방안, 연구활성화 체계, BK 이후의 장학정책, 교육연구 및 행정의 합리적 평가제도, 주차장 문제, 캠퍼스 건물 재배치, 연구원 숙소, 10년 후부터 시작될 전면적인 건물개축 방안 등 구성원들의 지혜와 합의가 필요한 큰 문제들이 즐비하다.

이런 복합적인 문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광범위한 논의는, 충분한 사전연구와 자료를 바탕으로 유능한 조정자의 주도하에, 불합리한 문제제기는 억제하고 관련된 사안을 적절한 크기의 작은 이슈로 나누어 하나씩 작은 결론을 도출하면서 최종적인 합의점을 찾아가는 토론형식이 가장 효과적이다. 즉, 문제점의 이해와 정책효과의 판단은 장기적이고 폭넓은 관점에서 하되 논의는 효과적인 정리가 가능한 소주제로 나누어 이루어지도록 유도해야 한다. 전자게시판은 간단한 문제에의 의견개진에는 효과가 있지만 복합적 논의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작은 예 하나를 가지고 전부를 확대해석하는 일반화의 오류가 극대화 되면서 논의는 없이 논쟁만 남게 되기 쉽다.

때로는 공론화의 정당성이 내부문제가 외부로 노출되면 학교위상이 추락한다는 국수주의적 이기심을 볼모로 반박되기도 하지만, 이런 반박은 타당하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악용의 소지가 많았다는 것이 지난 긴 세계역사에서 다양한 예를 통해 입증되어 있다. 문제가 있다면 드러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건전한 담금질에 의해 문제가 명확해 지고 바람직한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다. 심각한 문제를 억지로 덮는 것이야 말로 문제의 해결을 원천적으로 방해하는 것이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해교(害校)행위가 된다.

우리대학이 진실로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하려면 이러한 건전한 토론과 의견수렴 및 평가의 토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례 토론제도의 운영은 신문사가 할 수도 있고, 교수평의회가 총학생회나 직장발전협의회 등과 연합하여 할 수도 있을 것이며, 토론의 형식도 다양한 형태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적절한 형태의 공개적 토론제도가 한시 바삐 도입되어, 과거에 우리가 수없이 가슴아파했던 부적절한 정책의 재발이 방지되고, 우리들의 지혜가 모여지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대학내에서 정말로 일들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면서, 드디어 침체되어 있던 구성원들의 얼굴이 피고 의욕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