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 시대에 영어강의 장려는 잘못이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강의 장려는 잘못이다
  • 승인 2002.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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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이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국가적 장벽은 이미 허물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세계 각 나라가 필요한 전문 인력을 채용함에 국적을 가리지 않는 시대이다. 우리나라의 프로 스포츠 경기에 외국 선수가 뛰고 있고, 우리나라의 박찬호, 박세리 선수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외국인도 자격이 되면 국내 대학교수도 총장도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자국제품을 보호하기 위한 관세장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국산품 애용은 이미 지나간 시대의 구호인 듯 싶다. 질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애국심으로 국산품을 사주던 시대는 지나갔다. 필요하고 우수하면 외국인이건 외국제품이건 가리지 않는 시대가 바로 국제화 시대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인 POSCO와 삼성전자 주식의 반 이상을 외국인이 소유하고 있다. 우리 국민도 외국 기업의 주식이나 부동산을 살 수 있는 시대이다. 우리 대학도 국제화 시대의 추세에 맞추어 외국인 학생을 정식 학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국제화 시대에서 의사 소통을 위하여 통용되는 국제 언어는 단연 영어이다. 그러므로 영어를 잘 못하면 국제화 시대의 생존 경쟁에서 뒤처지기 십상이다. 국제화 시대에서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다고 할 것이다.

우리 대학은 개교이래 교환학생 신분으로 외국학생을 받았고 요즈음은 외국인이라도 정식 학생으로 입학하여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외국 국적 학생으로 학부과정에 1명, 대학원 과정에 11명이 본교에서 학위과정을 밟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 대학은 영어로 강의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으며 작년부터는 영어로 강의하는 교수에게 ‘동기 유발금’ 명목으로 영어 강의 과목당 100만원씩을 지원하고 있다. 영어 강의를 장려하는 목적은 국제화와 관련하여 앞으로 더 많은 외국 학생이 우리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데 있다.

그러나 국제화를 위하여 대학의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없다. 강의는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수강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언어로 강의하는 것이 수업 능률상 좋은지는 전적으로 강의하는 교수가 알아서 할 문제이다. 모국어가 한국어인 교수는 한국어로 강의하는 것이 가장 강의를 잘할 것이고 모국어가 한국어인 학생은 한국어 강의를 알아듣기가 제일 쉬울 것이다. 모국어가 영어인 외국인 교수는 당연히 영어로 강의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 교수가 한국 학생을 놓고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꼴불견이다. 영어로 강의할 때는 평소보다도 이해도가 떨어지고, 질문이 줄어들고, 결국 수업의 능률이 저하된다. 그리고 영어 강의가 영어 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함은 영어권 국가에 유학한 사람은 경험한 일이다. 영어 능력 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한국 교수의 영어 강의는 단지 학생의 강의 이해에 지장을 초래할 뿐이다.

우리 대학에 입학하는 외국 학생은 정원 외로 입학한다. 외국 학생임으로 동등한 실력을 가진 한국 학생보다 입학 허가를 받기 쉽다. 이것은 불공평한 처사이다. 외국 학생이란 이유로 한국 학생보다 실력이 뒤지는 학생이 입학한다면 국제화에 역행하는 일이다. 마치 외국 제품이니까 국산품보다 질이 떨어지더라도 사주자는 것이다. 또한 외국 학생이 한국어를 모르면 당연히 연구과제의 제안서나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지 못하고 따라서 지도교수의 학비 부담만을 가중시킨다. 대부분의 외국 학생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이다. 이들에게는 우리말을 배우게 하고 우리말로 강의를 듣게 하여야 한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영어나 한국어나 외국어이긴 마찬가지다. 외국 학생이 한국에 와서 한국말을 배워 한국말로 공부하고 한국말로 생활하게 하는 것이 국제화이다. 이들에게는 졸업 후 한국에 남거나 본국에 돌아가거나 한국어로 강의받은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야 영어권 국가가 아닌 한국에 유학 온 보람이 있을 것이다. 외국 학생에게나 한국 학생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영어 강의를 장려할 이유가 없다.

영어 강의를 함으로써 외국 학생을 유치한다는 발상과 영어 강의가 영어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는 잘못이다. 교육부와 BK21사업이 영어 강의를 장려한다하여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당하고 타당한지 검토하고 부당하다면 따르지 말아야 한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는 매우 중요한 언어다. 그러나 국제화란 이름아래 영어 강의를 장려하는 것은 사실은 비(非)국제화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