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와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구요?
공대와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구요?
  • 구지영 / 화학 99
  • 승인 2002.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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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공대에 다닙니다.” 라고 소개를 하고 나면 “공대다니면 남자들이 많아서 좋겠네요. 거의 공주대접 받지 않나요? “ 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게 된다. 그런 질문이야 그냥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로 신경 쓸만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같은 공대 남학우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다. 특히 공대 남학생인 자신에 비해 공대 여학생들은 많은 혜택을 입고 있다라고 생각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답답하다. 스스로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를 것이라 이해는 하지만 학내에서 남학우들이 다수라 그 인식이 진리인 양 받아들여지는 것이 문제다. 정작 공대 여학생으로서 4년을 보낸 나는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느껴왔는데 말이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소수집단은 다수에 밀려 불리한 입장이 되기 쉽다. 고의적이지 않더라도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 결정권자의 대부분이 다수의 입장이라 소수의 입장은 고려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학내에서 여학우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이 잘 반영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과대항으로 열리는 스포츠 경기들에서 여학우들의 활동은 응원석에 국한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입장이 고려되어 여학우가 참여할 수 있는 어떤 경기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이번에 열린 제 1회 포카전 (science war)에서도 그런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반면 화학과의 작년 체육대회에서는 여학생이 참여할 수 있는 경기(보디가드 피구, 이불에 여학우 얹고 달리기 등)들이 구성되어 큰 호응을 얻어낸 바 있다. 과대항으로 벌어지는 경기들에서도 그런 구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임문화도 다수인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간다. 술이 중심이 되고 밤늦게까지 지속되는 등 천편일률적인 모임문화는 비단 여학생들만 불편한 점은 아닐테지만 확실히 그런 모임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학생의 비율이 남학생에 비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자연히 여학생들의 참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학우의 참여가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어왔지만 그 원인을 여학우 개인에게서만 찾으려 하지 모임의 성격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모임문화의 차이는 여학생 모임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여학생 모임의 경우 보통 저녁 시간대에 맛나는 먹을 거리들을 잔뜩 사다 놓고 휴게실에서 한 판 즐거운 잔치가 벌어진다. 술이 없어도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며 선후배 간에 얼굴을 익히고 돈독히 정을 쌓는다. 술 잘 마시고 남학우들과 늦게까지 잘 노는 편인 나도 이런 분위기의 모임이 더 좋아서 꼭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나 같지 않은 여학생들은 오죽할까.

소수라는 점 외에도 공대와 여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오래 묵은 편견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들도 있다. 그냥 공대생으로 보여지기 보다는 여자 공대생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잦아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편견을 의식하여 애써 더 독하게 자기 관리를 하기도 한다. 또, 대학원에 진학하여 랩을 결정할 때 여학생보다 남학생을 선호하는 교수님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여학생들은 어떻기 때문이라는 등 그런 차별의 타당성을 주장하지만 보통 학생으로서 평가하지 않고 여자라는 점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임은 변함이 없다. 이런 점은 이공계의 교수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공대 여학생으로 지내오면서 느꼈던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보았지만 사실 이런 점들이 학교 생활하기에 크게 무리가 오는 부분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것 만큼 나름대로 변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사소할지 모르지만 위의 예들처럼 문제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물론 앞으로 점차 이공계 여성의 비율이 높아질 수록 소수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점들은 많이 개선될 것이다. 사소하지만 꽤 불편한 문제였던 교내 여자 화장실 부족은 여학우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여학우의 불편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개선되었다. 또, 이런 문제점은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서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최근 학생회 산하 여학생부가 생기는 등 여학생회 부활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그래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나 스스로가 자신을 위해, 앞으로 같은 일을 겪을 후배 여학생들을 위해 그런 일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 대학생활 4년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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