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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생들은 졸업한 선배들에게 연구나 회사 일의 재미에 대해 묻곤 하지만, 졸업한 친구들은 서로 일이 할만한지에 대해 묻는다. 어린 누군가에게 미래에 하게 될 일이란 ‘흥미’ 혹은 ‘꿈’에 걸맞은 단어지만, 나이를 먹은 당사자들에게 일이란 ‘책임’, ‘의무’에 가까운 단어들로 변해있다. 일을 공부 혹은 연구로 치환해도 이야기는 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 꿈과 즐거움을 말하던 친구들은 나이를 먹으며 점점 지겨움과 책임을 말하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전하는 ‘잘 지내니’라는 말에는 보통 ‘그냥 살지’, ‘힘들다’ 등의 자조적인 푸념들이 돌아오며 나만이 힘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는 공감대 뒤에 숨어 나의 태만함을 합리화한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 모두의 문제라는 식으로. 마치 ‘즐거운 일’ 같은 것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처럼.혹여 누군가 ‘재밌게 살고 있어’라는 이교도적인 말을 내뱉을 때면 그 말을 부정하기 위해 애쓴다. 누군가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일은 원래 재미없는 것이다’라는 그들의 진리에 적합하지 않기에 최선을 다해 그 반례를 깨부순다. ‘아직 어려서’, ‘업무의 강도가 낮아서’와 같은 그럴법한 이유를

78오름돌 | 이승훈 기자 | 2013-11-06 14:05

영화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탄생한 매체이며, 동시에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매체의 특성 또한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기존의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그리고 흑백에서 칼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영화는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며, 최근 3D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과학기술로 인해 그 면모를 달리 해왔다. 동시에 영화는 대중매체 중에서 가장 시각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서 ‘과학기술’ 자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과학기술로 인해 탄생한 매체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과학기술이 다뤄지는 방식은 아이러니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SF영화에서 과학기술의 산물과 그로 인한 인류의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으로 묘사된다. CF속에서는 과학기술이 인류의 편리한 생활을 보장하는, 즉 ‘테크노피아’가 묘사되지만, 영화 속에서의 미래는 고도로 문명화되어 인간의 삶이 제한되는 모습을 주로 보여준다. 영화 속 미래사회에서 인간은 지배-피지배라는 두 계급으로 나뉘며, 과학기술은 지배계급의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로서 사용된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된 과학기술로 인한 인간의 멋지지 않은

문화 | 이승훈 기자 | 2012-05-23 1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