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건)

우리대학의 밤은 칠흑같이 어둡다. 하지만 난 이 어두운 교정을 즐겨 산책한다. 밤을 잊은 연구실들의 불빛, 도서관의 장관, 통나무집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대한 숲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달과 수많은 별 등은 서울 쪽에서 오래 공부한 인문학 전공자에게는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이곳으로 내려온 지 여러 해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발적 유배’로 부르는 포항 생활은 여전히 호기심과 경이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적응되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의 모습은 매 순간 나의 예상을 여지없이 뒤엎어버린다. 공대생들은 사물을 지각하는 방식,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시각, 감수성의 확보 차원에서 인문계 학생들과 판이한 느낌이다. 수업 시간 역시 재미와 놀라움의 연속이다. 서정주의 시 하나를 언급했던 작년 생각이 난다. 옷이 문지방에 걸리자 그것을 신부의 욕정 탓으로 착각하며 줄행랑쳤던 꼬마 신랑 얘기다. 수년이 흐른 후 신부 집을 지나칠 때 여전히 다소곳이 앉아있던 신부의 몸에 손을 댔더니 먼지로 화하더라는 얘기. 앞으로부터 정확하게 5번째 줄에 앉아있는 남학생 두 명이 소곤거리는 대화가 내 귀에 들린다. “에이, 저건 말이 안 돼”

노벨동산 | 이상빈 / 인문 대우교수 | 2019-11-08 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