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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듣게 된 모 과목의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외국인 학생이 있는지 파악하셨다. 한국어가 어려운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100%영어로 진행해야 하겠지만 없다면 한국인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어 비중을 높이시겠다는 취지였다. 첫 수업시간의 수요조사에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이틀 뒤 두 번째 수업시간이 되자 못 보던 외국인이 들어와 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에 인사를 나누고 교수님께 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고 말씀 드려야 할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는 동안 그 외국인 친구의 앞에 앉은 학생이 멀리 있는 친구에게 고갯짓으로 뒤에 앉은 외국인을 가리키며 아주 크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야, 외국인 들어왔다. 나 이거 자르려고(수강취소를 의미함).” 한국어를 알아듣는 외국인 친구였기에 내가 더 민망했고 수업 후 물으니 그는 수강을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환영 받지 못한 유학생의 비애에 안타까우면서 한편으로는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토록 당당하게 외국인 친구를 한국어로 배척(?)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프로이트는 그의 저서 『문명 속의 불만』에서 이렇게 인용한 바 있다. ‘집단을 이루는 개인들은 단지 수가 많다는 이유 때문에

독자논단 | 유온유 /산경11 | 2015-03-18 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