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속에서의 자의식
집단 속에서의 자의식
  • 유온유 /산경11
  • 승인 2015.03.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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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에 듣게 된 모 과목의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외국인 학생이 있는지 파악하셨다. 한국어가 어려운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100%영어로 진행해야 하겠지만 없다면 한국인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한국어 비중을 높이시겠다는 취지였다. 첫 수업시간의 수요조사에서는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이틀 뒤 두 번째 수업시간이 되자 못 보던 외국인이 들어와 있었다. 안면이 있는 사이였기에 인사를 나누고 교수님께 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고 말씀 드려야 할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는 동안 그 외국인 친구의 앞에 앉은 학생이 멀리 있는 친구에게 고갯짓으로 뒤에 앉은 외국인을 가리키며 아주 크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야, 외국인 들어왔다. 나 이거 자르려고(수강취소를 의미함).” 한국어를 알아듣는 외국인 친구였기에 내가 더 민망했고 수업 후 물으니 그는 수강을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환영 받지 못한 유학생의 비애에 안타까우면서 한편으로는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토록 당당하게 외국인 친구를 한국어로 배척(?)할 수 있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프로이트는 그의 저서 『문명 속의 불만』에서 이렇게 인용한 바 있다. ‘집단을 이루는 개인들은 단지 수가 많다는 이유 때문에 저항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감정을 얻고, 혼자 따로 있었다면 억제했을 게 분명한 본능에 몸을 내맡긴다’ 개인이 원래의 모습과 달라지는 것은 집단에 속하게 되면서부터다. 즉, 지적 기능이 집단적으로 억제되는 반면 감정이 고양되는 것이다. 여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익명성이라 할 수 있다. ‘집단의 익명성과 이로 말미암은 무책임 때문에 평소에 개인을 억누르는 책임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따라서 개인이 자신을 억제하는 경향은 줄어든다’ 또한 집단의 윤리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집단의 윤리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면 개인의 윤리적 억제는 약해지고 개인 속에 원시 시대의 유물로 잠들어 있던 잔인하고 야비하고 파괴적인 본능이 깨어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개인이 집단에 속하게 되면서 개인 고유의 바람직한 속성을 더 이상 지니지 않게 되는 예는 충분하다. 프랑스 남부도시 툴루즈의 보클랭 중학교에 다니던 한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던 소년은 수니파 무장조직 IS가 공개한 인질 살해 영상에서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인질을 직접 총으로 여러 번 쏴 죽이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 소년과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은 충격에 휩싸였고 의사, 심리학자, 교사 등을 동원한 치료과정의 도움을 입어야 했다. 소년이 속했던 집단은 평화로운 일생을 공유했을 고향 친구들에서 이슬람 극단종교집단으로 바뀌었고, 친구들과 비슷한 청소년기를 거치고 있었다면 가졌을 윤리의식과 매우 다른 가치관 및 종교적 신념으로 정의된 자의식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전에 가졌던 틀로는 더 이상 납득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비록 개인의 속성이 집단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집단에 속하게 된다고 해서 개인의 행동 및 자의식에 대한 자각을 잃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많은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게 된다. 편파적인 집단 의식이 자의식에 비해 우세하게 작용할 때 이성적인 판단이 어려워지기는 쉽지만 우리가 속한 집단이 가치관을 형성하고 또한 존재 속성을 정의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서로 다른 집단에 속하게 된 다른 인물이 집단을 초월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처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한국어로 당당히 외국인 학생을 가리키며 영어로 수업하게 됐으니 수업을 못 듣겠다고 원망하던 학생은 한국에서 모국어인 한국어로 수업 듣는 것이 더 이해가 잘 되는 한국인 학생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할지 모른다. 공식적인 진행 언어가 영어인 수업을 택한 외국인으로서는 자신이 배척당하는 상황이 억울할 것이지만 말이다. 특정 종교의 이익관계에 위반되는 인질의 목숨은 빼앗는 것이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이라 여기는 소년 대원도 함께 어린 시절을 지낸 사춘기 또래 집단의 입장에서 보면 충격적이고 잔혹한 변화로 다가오는 것은 조금 더 확장된 예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