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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주사가 하나 있다. 했던 말을 다섯 번 정도 하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온 길바닥에 내 흔적을 남기는 ‘술자리 최악의 주사 TOP 3’에 들어갈 만한 주사는 다행히 아니다. 술에 진탕 취하면 멀쩡히 걸어서 방에 들어가 잘 씻고 침대에 눕는다. 침대에 누우면 오늘 있었거나 요즘에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줄곧 생각한다. 그러곤 감사한 사람이나 힘든 일이 있던 사람에게 글을 쓴다. 쓴 글을 새벽 아주 늦은 시간에 보내 놓고서 잠자리에 든다. 사실 술에 취하지 않은 새벽에도 일어났던 일들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니, 주사라기보다는 버릇에 가깝다. 다만, 글을 쓰는 빈도가 훨씬 낮을 뿐이다.내가 ‘편지’라 부르는 그런 글을 쓰다 보면 통째로 지우는 일이 잦다. 나는 글 주변이 없어 대개 편지에 내가 느끼는 감사나 위로가 원하는 만큼 드러나지 않는다. 편지의 길이나 표현이 마음을 온전히 전하기 충분하지 않으면 전체를 지우고는 뒤척이며 잠이 든다. “내가 전하고 싶은 감정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니 글이 더 잘 써지는 다른 날을 노려야겠다”라며 자신을 향한 자기변명과 함께, 나의 부족한 글솜씨는 고마움과 응원의 표현을 언제 다시 시작할지 약속하기 힘든 미래로 미룬

지곡골목소리 | 박찬우 / 화학 18 | 2022-05-02 2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