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그에서 포트리스까지
갤러그에서 포트리스까지
  • 김용하 / 컴공 박사과정
  • 승인 200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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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층의 사라을 받고 있는 온라인 게임 '포트리스'
호모 루덴스(Homo Lud ens)!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오직 게임에만 미쳐서 해 본 적이 있는가? 필자의 기록은 약 40시간. 당시의 최신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던 ‘커맨드 앤 컨커’(도스용)였는데, 참신한 게임 시스템, 화려하고 깔끔한 그래픽,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이 결합된 신기한 동영상 등등 도저히 모두 클리어할 때까지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다. 이렇듯 나에겐 식욕이나 수면욕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게임욕일진데, ‘게임을 왜 하느냐?’ 는 질문만큼 어리석은 질문도 없을 것이다.

1972년에 발표된 최초의 상업용 비디오 게임 ‘PONG’ 이래로 게임은 컴퓨터의 발전과 보조를 맞추어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다. 게임의 ‘재미’ 보다도 ‘신기함’이 앞서던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컴퓨터 게임은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특이한 놀이 시설로 취급되었다. 그러다가 8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동네 상가의 구석에 조그만 오락실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청계천엔 컴퓨터와 게임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컴퓨터 게임은 우리의 일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이 시절의 히트 게임이라면 빠라바라밤빠~ 하는 배경 음악으로 게임 음악의 애국가가 된 방구차라던가, 세계적으로 대 히트하면서 게임의 대중화에 기여한 갤러그, 일찍부터 열광적인 매니아들을 만들어낸 울티마 시리즈의 초기 작품들을 들 수 있다.

그러다가, 게임이 유저들 사이에서 본격적인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은 90년대초. 오락실에 대전 게임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스트리트 파이터 2를 기점으로 오락실에 죽돌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무슨 캐릭터를 쓰는 누구’라는 식으로 플레이어들 사이에 암묵적인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어느 동네에 갔더니 달심을 쓰는 초고수가 있다더라’ 라던가, ‘가일의 그림자 잡기 버그를 어떻게 이용하는지’가 일상적인 화제가 될 정도로 게임은 평범한 일상 생활에 침투하게 된 것이다.
90년대 말에 이르면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 환경이 발달하면서 버츄어 파이터나, 음악 게임 계열의 특정 게임만을 목적으로 하는 동호회나 클랜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게임 문화의 빅뱅이 된 것이 바로 스타크래프트였다. 처음에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매니아들 사이에서나 인기가 있었지만, 인터넷을 이용한 배틀넷과 래더 시스템이 마침 경쟁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격과 딱 맞아 떨어지면서 급속도로 일반인들에게 인기가 확산되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만 장도 팔기 힘들었던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에서는 이례적으로 200만장이라는 기적적인 판매고를 올릴 정도로 인기를 얻었는데, 급기야는 공중파에서 게임의 플레이 화면을 중계하는가 하면, 게임만으로 먹고 사는 프로게이머들마저 등장시키면서 게임 업계의 파이와 게임 유저층을 키워 놓았다. 이제는 게임도 어엿한 대중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자기 소개 란에 취미가 게임이라고 적어도 ‘오타쿠’ 취급받을 염려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아직 게임이 주류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기성 세대들은 게임에서 상업성 이상의 존재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편향된 시각은 일간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매스 미디어가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잘 드러나는데, 기본적으로 ‘애들이나 하는 시간 낭비’ 라는 오해를 근저에 깔고 문화적인 기능으로서의 접근보다는 상업적인 가능성 위주의 경제 효과만 계산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게임의 소비층 자신에게도 문제는 있는데, 현재의 게임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기 보다는 스타크래프트와 인터넷 보급과 같은 유행을 타고 갑자기 번진 것이다 보니, 불법 복제나 온라인 플레이에서의 저질 매너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이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매체 자체가 시대의 첨단 기술에 의존적인 게임의 특성상 영속적인 예술성을 획득하기 힘들다는 점도 문화로서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대의 대세는 게임의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게임에 대한 기성세대의 편견은 희석되어 가고 있으며, 게임에서 일어나는 각종 역기능들도 커뮤니티들을 중심으로 자정해 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게임, 포괄적으로 말하면 디지털 엔터테인먼트(digital entertainment)의 역량이 일방적인 전달 위주의 기존 미디어에 비할 바 없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에 의한 기존 문화의 대체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될 것이다. 에버 퀘스트에서 수십명의 동료들과 목숨을 걸고 드래곤을 퇴치하는 모험이나, 그란츄리스모에서 꿈에서만 그리던 명차들을 몰며 극한의 레이싱 테크닉을 연마하는, 그런 1인칭의 감동은 게임 이외의 다른 미디어에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21세기. 소설과 영화가 게임에 그 문화적인 파워를 상속하게 될날도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