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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에 대한 사랑
[388호] 2017년 09월 20일 (수) . .
사랑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사랑에 빠지는 날엔, 누구든 그 사랑에 눈멀고, 귀먹게 된다. 닐 포스트만은 “미국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한 사랑에 빠졌다”라고 진단한다. 그는 “과학기술은 파우스트의 거래(Faustian bargain)”와 같아서 늘 “주는 것이 있으면, 가져가는 것이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과학기술을 잘 사용하려면, 꼼꼼히 손익을 따져 거래하는 것처럼 깨어있어야 하는데, 미국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한 사랑에 빠져, 눈멀고 귀먹어 현명한 거래를 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한데, 돌아보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사정도 그리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YOLO!”, “Carpe diem!”,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지금 이 순간!”, “부러우면, 지는 거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첨단 과학기술 제품 광고의 끊임없는 권고, 예능프로그램과 드라마 속 PPL 광고, 이 모든 것들의 무차별 폭격 속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는, 현대 과학기술의 산물들에 대한 사랑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는, 늘 채워지지 않은 갈망 때문에 굶주린다.
“Hunger for love!” 사랑에 빠진 연인 간에서 이 말은, 그래도, 그 허기가 채워지는 날, 그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있을 수 있기에 아름다운 시구가 된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 대한 배고픔은 과연 채워지는 날이 올까? “현대 과학기술, 이만하면 되었다”라 인정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과학기술에 대한 현대인의 사랑은 강렬하다. 과학기술은 우리가 눈멀고 귀먹을 만큼 달콤하다. 과학기술이 펼쳐 보이는 내일은 항상 희망으로 가득해 보인다. 하지만, 그 희망은, 결코 내 품 안에 잡혀 차분히 머물지 않는다. “한 발 다가서면, 두 발 도망간다.” “A bad case of loving you!”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애정 행각엔 마지막 목적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컴퓨터 메모리에서 두 배의 집적도가 가능해진 순간, 네 배로, 다시 여덟 배로의 목표가 세워지는 것은 자동적이다. 생각해보면, 기술적 혁신을 이뤄 낸 연구팀을 “이제 이만하면 되었으니, 집에 가세요”라며 해체할 수 없는 노릇이니, 과학기술은 제동장치가 없는 기관차처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자크 엘륄은 “기술은 자율적이다”라는 주장을 하여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과학기술이 어떻게 자율적인가? 하지만, 과학기술 현상 자체를 볼 때, 그의 주장은 매우 호소력이 있다. 한번 발전이라는 방향을 향해 나선 과학기술은 멈추지 않고 그 발전 방향을 지속하려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과학기술이 가는 길은 과학기술자의 선택으로 ‘구성’되어지기 때문에, 결국 과학기술은 인간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연구할까?”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서, 과연 과학기술인들은 자신이 하는 과학기술에 대해 얼마나 생각할까?
“저는 연구실에서 연구만 했기 때문에 그런 건 잘 모릅니다”라는 말은 무지를 드러내는 말이지만, 종종 학자들에겐 자신의 전문가로서의 삶을 은근히 부각시키려는 복심에서 하는 말일 때가 있다. 요컨대,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에 대해 너무나 깊은 사랑에 빠져서, 삶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눈멀고, 귀먹었다는 말인데, 그러니, “제 삶이 부끄럽지 않아요, 저는 사랑에 빠졌거든요”라는 고백으로 들리는 대목이다.
돌아보면, 과학기술은 한국인이 사랑의 대상으로 삼을 만하기도 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쓸 때, 경제를 부흥시키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낼 때, 늘, 과학기술은 우리에게 더없이 고마운 친구였다. 지금도,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위한 혁신을 통해, 또한 세계적 기술 벤처 창업을 통해,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유일한 수단이 과학기술의 추구에 있다는 생각은 아마도 우리 모두의 공감대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 모든 국가적 기대감을 현실로 만들어 갈 과학기술인들은 지금보다는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으며, 누구의 수고로 내가 누리는 행복이 가능하며, 어떤 미래가 우리, 더 나아가 모든 인류를 행복하게 할 것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일에, 우리는 좀 더 시간을 써야 한다. 더욱더 귀 기울여 듣고, 힘써 공부하고,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어지럽게 격변하는 이 시대에, 현대 과학기술을 그래도 한 자락씩 이해하는 과학기술인들의 어깨엔 어느 때보다도 무거운 역사적 책임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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