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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함이 물어온 여유
[383호] 2017년 03월 15일 (수) 오동현 / 기계 13 .
나는 굉장히 산만한 사람이다. 무엇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그 덕에 한 시간이면 족히 끝낼 과제도 남들보다 몇 시간씩이나 더 걸릴 때가 많고, 친구와 대화를 할 때도 주제를 수시로 바꾼다. 학부 9학기나 되어서 6번째 동아리에 가입했다. 가벼워 보인다며, 진득한 멋이 없다며 주위로부터 꾸짖음을 자주 들었고 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자격지심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학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의미는 학부에서 쌓은 전공 지식이 아닌 나의 산만함에 대한 이해였음을 이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1학기와 달리 2학기엔 학교의 문화가 하나로 통일되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쉽게도 나의 효자동 생활에서는 여유가 보이질 않았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지난 한 해간 RA로 활동하며 진행한 사생 면담에서 가장 많이 들어온 고민은 학업 스트레스와 놓쳐버린 주체성이었고, 이따금 갖는 술자리에서도 ‘하루를 보내는 기계가 된 것 같다’는 자기소견은 단골 소재였다. 습관적 바쁨이 곳곳에 있는 캠퍼스에서 자신을 잃는 것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낮에는 수업, 저녁엔 과제, 새벽엔 야식과 술로 자신을 내려놓고 조용히 획일화되어간다.
이때 잃어가던 나를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산만함이었다. 본능적으로 집중에서 깨어날 때, 눈앞의 일을 해야 하는 이유에 의문을 품었고, 판단의 주체를 자신의 선호도로 삼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엄격한 자기관리와 따라가지 못하는 나에 대한 강박증을 내려놓고는 ‘관심있는 것’에 시선을 돌렸다. 처음으로 뛰어든 것은 기초필수 과목으로 바빴던 1학년 1학기에 수강한 심리학 수업이었다. 꾸역꾸역 하루를 보내다 오후 2시 무은재 306호에 들어서는 순간은 일탈이 가져다주는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했다. 첫 도전 이후의 시도들은 더는 두렵지 않았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축제 이틀 밤을 내내 술을 팔고 2천 원만 남기기도 했고, 정말 힘든 밤이면 친구와 차를 빌려 멀리 바다로 나가기도 했다. 주말에는 읽지 못했던 책 한 짐을 빌려 읽었다. 교환학생으로 유럽을 갔을 때, 거의 모든 미술관을 견학했다. 그것이 책이든, 명화이든, 음식이든, 사람이든, 무언가와의 교감은 무수한 경험이 되었다. 경험은 쌓여 나만의 가치관, 취향, 취미, 성격을 형성했고 껍데기뿐이던 내 안을 채웠다. 비로소 나는 천천히 나의 스타일을 찾아갔다.
친구와 맥주를 마시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는,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저 차를 만들지 않겠어”라며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더욱 다양한 가치를 삶의 이면에서 찾아내기 위해선 알맞은 시기의 과감한 탈선이 굉장히 중요하다. 볕이 좋거든 핸드폰을 방에 두고 학교를 조용히 산책해보라. 잎새를 들춰보며 보이지 않던 ‘나만의 시간’을 찾아보자. 지난 금요일 공학관에서 돌아오는 길, 언덕에 나란히 누워있는 후배들 사이로 낭만이 보여 안도감이 들었다. 몇 밤 뒤면 생활관 7동 앞의 터질 듯한 목련이 봄을 알린다. 부드러운 연분홍으로 온 세상이 뒤덮일 월말, 잠시 봄바람을 머리에 담아보는 여유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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