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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사명으로서의 파괴적 혁신
[382호] 2017년 03월 01일 (수) . .
“혁신”이라는 단어만큼 현대인들이 애용하는 단어도 드물 것 같다. 별로 크게 달라지는 바 없어 보이는 일을 조금 보기 좋게 포장하려 할 때 우리는 혁신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슴 깊이 담고 있는 세상만사에 대한 답답함을 달래기에는 “개선”이니 “향상”이니 하는 정도의 단어는 충분하지 않은 모양이다. 거기에 다소 “폭력적”이기까지 한 “파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파괴적 혁신”이 많은 한국인들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에도 이런 심리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파괴적 혁신”으로 번역된 하버드 경영대학 크리스텐슨 교수의 혁신이론에는 사실 폭력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 원어로는 “Disruptive Innovation”으로 “Sustaining Innovation”의 상대 개념으로 소개한 그의 혁신이론은 파괴와는 매우 다른 개념이 담겨 있다. “존속적 혁신”으로 번역된 “Sustaining Innovation”은 우리가 통상 생각해온 혁신의 개념으로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등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혁신을 말한다. 마치 관성을 가진 듯 한 번 진행을 시작한 방향을 계속 그대로 유지하려는 혁신의 방향을 의미한다. 프로펠러에서 제트엔진으로 그리고 로켓으로의 더욱 빠르고 강한 추진력을 가진 비행체의 추구 혹은 키로, 메가, 기가, 테라바이트로 변화하는 소형화의 추구, 이런 변화를 존속적 변화라 하고 이는 당대의 “최강자”가 이끌어 가는 변화라 부른다.
그런데, 이런 강자들은 새로운 강자의 출현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자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아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경쟁자의 출연으로 멸망한다는 것이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 이론의 요지이다. 포드사의 모델 T에 시작하여 더욱 크고 강한 자동차를 만들어 가던 미국 자동차 기업인들에게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던 일본 차가 그리고 다시 한국 자동차가 자동차를 발명한 나라 미국에서 일구어 낸 성공. 깡통에 비유되던 장난감 같은 PC가 어떻게 거인 같았던 모든 중대형 컴퓨터 회사를 역사 속에 사라진 공룡과 같게 만들었는지 등을 설명하는 이론이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 등장하는 주목받지 못하는 경쟁자에 대한 크리스텐슨 교수의 설명에 “Serving the unserved”라는 원리가 있다. PC가 그랬고, 일본과 한국의 초기 자동차들은 그 시대의 첨단 기술의 산물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아니면 자동차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unserved) 사람들을 위한 제품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엔 초라했던 그 제품들은 당대의 유용한 기술을 더욱 많은 인류가 편안하게 누리게 하였고, 점점 개선되어 당대의 거인들을 몰락시켰다는 것이다.
이 원리는 대학의 참된 사명을 생각할 때 주목해야 할 원리가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그 사회 안의 “강자”들의 필요에만 주목하는 경향을 보이게 됐다. 연구비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사회 안의 승자들이요 강자들이다. 그 연구비를 주는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섬김을 받고 있는(served)” 거인들이다. 물론 연구 주제와 관련하여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은 순수한 연구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 연구비의 매우 작은 부분일 뿐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대학은 “섬김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섬길(serving the unserved)” 수 있을까?
바야흐로 21세기는 인터넷의 시대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자신의 교육 콘텐츠를 무료로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대한민국 공학교육의 최고봉에 선 포항공대의 실재 교육과 이러한 인터넷 교육 콘텐츠를 비교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MIT나 하버드의 교육 내용이라 해도 아직은 대체재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콘텐츠가 20억의 최빈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가뭄의 단비가 아닐 수 없다. 그 내용들은 개선되고,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크리스텐슨 교수의 “파괴적 혁신” 이론은 결국 인터넷이 대학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 말하는 것일 수 있다.
대학의 사명은 그 대학에 돈을 주는 주체들만을 섬기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끊임없이 그 사회에서 소외되고 섬김을 받지 못하는 필요를 찾아 그것을 채우기 위해 지식을 만들고 전파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이런 미련해 보이는 일이 결국 세상을 바꾸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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