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과 함께 하는 그림자 놀이
술 한잔과 함께 하는 그림자 놀이
  • 김동성 교수, 김원경 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7.01.0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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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이용한 액체의 도수 및 당도 측정
연말연시 각종 술자리가 잦아지는 요즘, 여러가지 술을 섞어 마시는 폭탄주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도수가 높아 마시기 부담스러운 양주나 소주에 도수가 낮은 맥주나 음료수를 섞으면, 마시기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빨리, 많이 마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우리네 취향에 맞는 듯하다. 폭탄주는 참석자들의 취향과 상태,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적절한 비율, 즉 도수로 만들어야 하므로 만드는 사람의 경험과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제조된 폭탄주들이 각각 어느 정도의 도수를 갖는지, 얼마나 균일하게 만들어졌는지 알아보려면 직접 마셔볼 수밖에 없을까? 어떻게 하면 즉석에서 쉽고 간단하게 용액의 도수를 측정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액체에 섞여 있는 첨가물의 양을 측정하는 데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용액의 농도 측정
만약 용액을 이루고 있는 구성 성분을 알고 있다면 그 농도를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용액의 늘어난 비중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코올 도수를 측정하는 기구인 주정계의 원리로 널리 쓰이고 있다. 그 외에도 용액의 전기전도도, 어는점, 끓는점 등 대부분의 물성치인 용액의 농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위 방법들은 추가적인 측정 장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액체의 특성을 파악하는 목적에는 적합하지 않다. 여러 액체들 간의 차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방법이 있다면 가장 간편할 것이다. 액체의 구성 성분들이 서로 다른 색깔이나 투명도를 갖고 있다면, 여러 액체들 간의 차이를 육안으로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을 이용하여 정량적 분석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본 연구진은 대표적인 광학적 물성치인 굴절률을 이용하여 액체의 특성 파악을 시도해 보았다.

액체의 굴절률
빛의 속도는 진공 상태에서 가장 빠르고, 액체나 고체와 같은 매질 안에서는 느려지는데, 이 느려지는 비율을 굴절률이라고 한다. 굴절률은 빛의 굴절, 반사 현상 등과 관련이 깊으므로 광학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물성치이다. 특히, 액체의 굴절률은 식품의 당도, 산업용 오일의 노화 정도, 건강 상태에 따른 체액의 변화 등을 알아보는 데 널리 사용되고 있다. 순수한 물의 굴절률은 1.33의 값을 갖는데, 이는 물속에서는 진공에 비해 빛의 속도가 약 1/1.33 = 75%로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물에 섞여 있는 설탕, 소금이나 알코올은 빛이 이동하는 것을 더욱 방해한다. 설탕물이나 술에서 빛의 속도는 순수한 물과 비교하여 더 느려지게 되고, 굴절률은 물보다 커지게 된다. 정리하자면, 물에 설탕, 소금, 알코올과 같이 다른 물질들이 섞일수록, 그 액체의 굴절률은 증가하게 되고, 결국 굴절률을 측정하게 되면 거꾸로 당도, 염도, 도수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굴절률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서는 프리즘, 광학렌즈, 현미경 같은 정밀하고 비싼 광학 장비가 필요해 실생활에서 바로 측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림자를 이용한 굴절률 측정
최근 본 연구진은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는 액체의 그림자를 확인하여 그 액체의 굴절률을 측정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림 참고) 플라스틱 사각 블록에 원통형 저장공간을 만들어 측정하고자 하는 액체를 채운 뒤, 사각 블록의 뒷면에 빛을 비추고, 앞쪽에 투과된 빛의 분포를 관찰하였다. 그 결과, 원통형 저장공간의 가운데 부분은 밝게 보이는 반면, 저장공간의 양쪽 가장자리는 어둡게 보였다. 실험과 이론적 분석을 통하여 이 어두운 부분, 즉 그림자의 너비가 넓으면 액체의 굴절률이 낮은 것이고, 그림자의 너비가 좁으면 액체의 굴절률이 높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을 조금 더 확장해서 액체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그림자의 너비가 좁아지는 경우 액체의 당도가 높거나 알코올 도수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림 참고).

그림자의 발생과 굴절률 측정 원리
그림자가 생기는 이유는 원형 저장공간에 담긴 액체와 사각기둥의 굴절률이 서로 다르고, 그 차이에 따라 빛의 이동 경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빛이 플라스틱 용기를 통과하지 못해 까맣게 보이는 것인데, 액체의 굴절률에 따라 빛의 경로가 바뀌면 그림자의 너비 역시 달라질 수 있다. 플라스틱 용기의 뒷면에서 들어온 빛은 원통형 저장공간에 담긴 액체를 만난다. 이 측정 장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측정할 액체와 고체 용기의 경계면을 원형으로 만들어 위치에 따라 빛의 입사각을 변화시킨 것이다. 용기의 중앙 부분은 입사각이 0도이고, 빛이 그대로 투과하여 밝게 보인다. 용기의 양쪽 가장자리로 갈수록 입사각이 점점 커져서 굴절 현상이 발생하는데, 실험에 사용한 플라스틱 용기의 굴절률이 액체의 굴절률 보다 높았기 때문에 빛은 퍼지게 되며 투과한 빛의 밝기는 중앙에 비해 어둡다. 좀 더 가장자리로 가면 입사각이 급격하게 커지고 임계각을 넘어서면 전반사가 일어난다. 즉, 원형 용기의 가장자리는 빛이 완전히 통과하지 못하게 되어서 까만 그림자로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빛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면, 액체의 굴절률이 높으면, 즉 플라스틱 용기의 굴절률과 비슷해지면 그림자의 너비가 좁아지고, 반대로 굴절률이 작은 액체의 경우 그림자의 두께가 두꺼워진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연구에서는, 용기에 발생하는 그림자의 너비와 그 용기에 담긴 액체의 굴절률 관계를 알아보았고, 그 둘 사이에 선형적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따라서 액체의 굴절률과 그림자 너비 간의 관계를 미리 알고 있다면, 그림자의 크기를 통해서 액체의 굴절률을 측정할 수 있다.
 
가정에서도 손쉽게 표면이 매끈한 컵을 이용하여 위와 유사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림자를 이용한 굴절률 측정 장치는 구조와 제작이 간단함을 물론 자연광을 이용하면 외부 전원이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일상생활에서도 간편하게 액체 특성을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