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자기 성찰적 글쓰기
윤동주의 자기 성찰적 글쓰기
  • 노승욱 / 인문 대우조교수
  • 승인 2016.05.0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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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에서 매 학기 글쓰기 수업을 시작할 때 학생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쓰게 한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쓰게 하면 매우 천편일률적인 유형으로 글을 쓰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특징은 마치 이력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자신의 출생지, 출신 학교, 가족 관계 등을 나열하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이른바 ‘자기 PR’에 열을 올리는 자화자찬의 글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자화상 시를 써 보게 했다. 자화상 캐리커처(caricature)를 글쓰기 노트 표지에 직접 그려보게도 했다. 그리고 자화상 시의 사례로 윤동주(尹東柱)의 자화상 연작시를 학생들에게 읽게 했다. 그런 다음에 각자가 쓴 자화상 시를 동료 학생들 앞에서 낭송하며 발표하게 했다. 학생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가감 없이 자화상 시로 표현했는데, 오히려 그 내용은 창의적이면서 호감이 가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올해 2월에 영화 〈동주〉가 개봉되면서 시인 윤동주의 삶과 그의 시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저예산 영화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개봉 후 두 달여가 지난 현재, 누적 관객 숫자가 116만여 명을 넘어서고 있다. 필자는 윤동주 시인과 자그마한 인연이 있다. 몇 년 전에 윤동주의 초판본 시에 주석과 해설을 붙여서 『초판본 윤동주 시선』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1917년 12월 30일에 태어난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된다. 필자는 윤동주의 자기 성찰적 글쓰기가 포스텍 학생들을 포함해서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序詩)」(1941.11)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윤동주를 이슬만 먹고살았을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고백하는 시인을 보면서 이런 흠, 저런 허물을 지닌 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인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은 그의 시를 읽으면서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놓게 된다. 시는 아름답지만 현실은 추악하고, 시인은 고결하지만 독자들은 때가 묻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윤동주가 기독교인으로서 남다른 성결 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도 때가 묻고 흠이 생길 수밖에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다만, 그는 자기 성찰적 글쓰기를 통해 그 때와 흠을 씻어내고자 치열하게 노력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영화 〈동주〉를 통해서 우리는 낯선 이름 하나를 듣게 된다. 바로 ‘히라누마 도쥬(平沼東柱)’라는 이름이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이때 도항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성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된다. 어찌 보면 그는 유학 수속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창씨개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1942년 1월 19일, 연희전문학교에 ‘히라누마 도쥬’라는 이름을 적은 서류를 제출하고 굴욕감과 부끄러움에 괴로워하다가 닷새 후인 1월 24일, 통렬한 속죄와 회한의 고백을 담은 「참회록(懺悔錄)」을 작성했다.
윤동주의 「참회록」은 단지 과거의 부끄러운 잘못을 일회적으로 고백하는 시가 아니다. 그는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라고 미래의 자신에게 힘주어 말하고 있다. 유학을 위한 행정적 절차라는 상황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라고 다짐하면서, 자신의 참회가 일회성 참회가 되어서는 안 됨을 자신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윤동주도 흠과 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지만, 그 흠과 점을 대하는 태도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내적 성찰로 일관돼 있었던 것이다.
어떤 문학사가는 윤동주를 가리켜 부끄러움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시인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또는 그의 삶에서 부끄러움이 우리에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누구보다도 매섭게 자신을 꾸짖으면서 올곧게 살아가고자 했던 시인의 마음가짐 때문이었으리라. 1945년 2월 16일, 일제로부터 정체불명의 주사를 맞다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무고하게 옥사했던 윤동주가 남긴 자기 성찰의 글들은 일본인은 물론, 우리 민족과 세계인들에게까지 부끄러움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진정한 부끄러움은 자기 자신의 허물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철저하게 회개할 때만이 느낄 수 있는 매우 귀중한 감정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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