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 양적유전학
학술 - 양적유전학
  • 김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통합과정
  • 승인 2015.09.09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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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유전학과 양적형질 유전자위치 분석
생물이 지닌 여러 특성은 같은 종 내에서도 연속적인 분포를 나타낸다. 예컨대 키, 몸무게, 걷는 속도 등은 작은 키와 큰 키, 가벼움과 무거움, 느림과 빠름으로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넓은 범위 내에서 다양한 값을 지니게 된다. 이런 연속적인 분포가 나타나게 되는 데에는 매우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다. 유전학자들은 이 많은 요인 중에서도 특히 유전자가 어떻게 그 특성 및 차이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유전학 중에서도 이처럼 집단 내에 존재하는 연속된 형질을 다루는 유전학을 양적유전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연속된 형질이 나타나게 하는 유전자가 포함된 꽤 넓은 DNA 부분을 양적형질 유전자위치(Quantitative Trait Loci; QTL)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QTL 분석법을 통해 어떻게 연속된 형질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찾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QTL 분석의 과정은, 비유하자면 이렇다. 두 개의 책장이 있다. 각각에는 1번부터 22번까지 책이 꽂혀 있고, 이 책들의 내용은 같은 번호끼리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진 않다. 연구자들은 책장 A와 B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이 책을 직접 읽을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아주 번거로운 방법을 택한다. 사람들에게 각각의 책장에 꽂힌 책을 읽게 한 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읽었는지 조사하여 책장에 담긴 내용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며 많은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흥미롭게도 특히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언급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책장 A에 꽂힌 책을 읽은 사람은 모두 아프리카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책장 B에 담긴 책을 읽은 사람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책이 이 두 집단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걸까? 연구자들은 이 책장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결심한다.
책장의 내용을 연구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책장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던 연구자들은 고민 끝에 책장 A와 B에 꽂힌 책들을 뒤섞어 새로운 책장 조합을 만드는 방법을 이용하기로 한다. 이 새로운 책장에는 반드시 1번부터 22번까지 모두 한 권씩 꽂혀 있어야 한다. 예컨대 책장 알파는 1~5번은 책장 A, 6~12번은 책장 B, 13~22번까지는 또 책장 A에 있는 것과 같은 책으로 이루어져 있고, 책장 베타는 1~13번은 책장 A, 14~22번은 책장 B에 있는 것과 같은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두 책장 중 알파에 꽂힌 책을 읽은 사람만 아프리카 여행 얘기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5번, 그리고 13번 책은 알파와 베타 책장 모두 책장 A에서 온 책으로 꽂혀 있기 때문에, 만약 이 책에 아프리카 얘기가 담겨 있었다면 알파와 베타 책장에 꽂힌 책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아프리카 얘기를 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6~12번, 14~22번 책 중에 몇 권의 책이 아프리카 얘기를 담고 있을 것이라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이후, 이들은 알파와 베타 같은 책장 조합을 수백 개 준비하고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조사하고 분석한다. 지난한 과정 끝에, 연구자들은 마침내 11번 책과 19번 책이 아프리카와 남미 이야기라는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아직 두 책의 몇 쪽에 담긴 문구가 이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알 순 없었고, 이들은 이를 좀 더 명확히 하고자 책장 A에 꽂힌 11번 책과 같은 책이지만 특정 부분을 조금씩 찢어 놓은 책을 준비했다. 그리곤 이 책을 다시 책장 A에 꽂고, 어떤 부분이 찢겨 나갔을 때 사람들이 아프리카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19권으로도 비슷한 방식을 거치고 난 뒤에, 이들은 11권의 처음 30쪽, 19권의 마지막 30쪽이 아프리카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드디어 책장 A와 책장 B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인 중 일부를 알아낸 것이다.
실제 QTL 연구도 이와 비슷하다. 내가 키우고 있는 예쁜꼬마선충, 전 세계 다양한 서식지에 분포하며 다양한 생물학 연구에 쓰이고 있는 이 작은 벌레를 예로 들어보겠다.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하는 곳에서는 주로 영국에서 채집한 뒤 수십 년 동안 연구실 환경에 적응한 벌레를 사용한다. 이 때문인지, 이 영국 출신은 많은 특성은 분명 다른 지역의 벌레들과 비슷하지만 몇몇 특성은 다른 벌레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유전적으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하와이 출신 벌레와는 뭉치는 정도, 평생 낳는 알의 개수, 몸 크기 등 수많은 특성이 다르다. 마치 서로 다른 두 책장에 꽂힌 책을 읽고 난 사람들의 평이 판이했던 것과 비슷하다.
둘 사이의 차이를 확인한 연구자들은, 책장에 꽂힌 책을 와르르 쏟아 새로운 책장 조합을 만들었던 것처럼, 새로운 조합의 벌레를 만들고자 영국 출신 벌레와 하와이 출신 벌레를 교배시켰다. 이렇게 되면 영국 출신 벌레의 유전자와 하와이 출신 벌레의 유전자가 마구잡이로 섞이게 된다. 이 다양한 조합의 벌레를 수백 종류 준비한다. 그리고 각 책장에 꽂힌 책을 읽게 하고 그 내용을 서술하게 했던 것처럼, 이 수백 종류의 벌레들이 영국 벌레의 특성을 따라가는지 아니면 하와이 벌레의 특성을 따라가는지 샅샅이 조사한다.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각 벌레의 유전자위치 중 어떤 게 영국 벌레 것이고 어떤 게 하와이 벌레 것인지도 개략적으로 확인해 두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렇게 교배시켜 만든 벌레들은, 책이라는 덩어리가 책장을 22개로밖에 쪼개지 못했던 것처럼, 세세한 수준, 예컨대 유전자 수준으로 전체 유전자 집합이 잘 섞여 있진 않다. 이 때문에 양적 유전자 분석이 아니라 양적 유전자위치 분석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백 종류의 벌레들로부터 어떤 유전자위치가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확인한 뒤에, 적게는 서너 개부터 많게는 십 수 개에 이르기까지, 그 유전자위치에 들어있는 여러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정확히 어떤 유전자가 바로 그 차이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다. 책을 찾은 뒤에는 책도 쪼개서 몇 쪽에 아프리카 여행이 담겨 있는지 찾았던 것과 비슷하다. 이 과정을 거쳐 마침내 그 유전자를 찾게 된다.
이 분석 과정은 긴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가 이미 누군가 만들어둔 벌레 조합을 이용해 실험을 하곤 한다. 일을 줄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염색체 교체 벌레 조합을 사용하는 것이 있다. 예컨대 다른 염색체는 모두 영국 출신 것인데 딱 한 개만 하와이 출신 것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여섯 개의 염색체 중 어떤 염색체가 차이를 나타내게 하는지 확인하여, 가능한 범위를 좁히고 시작하는 것이다.
QTL 분석은 주로 자연에 이미 존재하던 변이, 혹은 생물이 연구실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긴 변이를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새로운 유전자를 찾을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중 하나이다. 실제로 예쁜꼬마선충만 보더라도 앞서 언급한 특성뿐만 아니라 페로몬 민감성, 살충제 저항성, 그리고 병원균 회피 행동을 비롯한 여러 특성에 관여하는 여러 유전자를 찾는 데 이 방법론이 많은 기여를 했다. 이러한 일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많은 연구자들이 유전자와 환경의 다양하고 복잡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고자 노력 중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이 진행될 재미있는 연구를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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