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人材)가 없는 인재(人災)
인재(人材)가 없는 인재(人災)
  • 김현호 기자
  • 승인 2015.05.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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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인도에 공대생, 의대생, 자연대생, 인문대생이 표류했다. 공대생은 불을 피우고 도구를 만들었으며, 의대생은 약초를 따오고 사람들을 치료했고, 자연대생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을 채집했고 인문대생은 고기가 됐다.
위의 글은 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글이다. 최근 인문학 전공자가 취업에서 불리한 현실을 풍자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인구론’이라고도 불린다. ‘인문계의 90%는 논다’의 약자다. 인구론의 현실은 취업과는 거리가 먼 고등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3월 29일, 서울시교육청이 밝힌 전국연합학력평가 응시 현황에 따르면 고2 이과 응시자 중 과학탐구를 선택한 학생은 전체의 44.8%였다. 고3 응시자들의 과학탐구 응시율(39.6%)보다 5%포인트 이상 높았다. 지난해 3월 고3 학력평가에선 과학탐구 응시생 비율이 39.3%였다. 과학탐구 응시생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반면 사회탐구 응시생 비율은 2011년 60%, 2014년 58.7% 등으로 줄어들고 있다. 고2 학생의 경우 53%였다.
이처럼 인문학은 모든 젊은 세대에게 외면을 받고 있다. 서점의 인기도서는 인문학 도서이지만 인문학도는 줄어들고 있다. 그들은 '기업이 원하는 것은 인문학도가 아닌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공대생'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이공계는 항상 선호됐을까? 그것도 아니다. ‘이공계를 나오면 허드렛일을 한다’라며 이공계 기피현상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는 10년도 안 된 이야기다. 지난 2007년, 우리대학 수석 졸업생이 서울대 의대에 편입하면서 이 문제는 더 큰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았다. 당시 네티즌들은 ‘화학과를 졸업하면 설거지(실험기구 청소)나 한다’ 등의 발언을 하며 이공계를 무시했다. 그 결과, 이공계 인재(人材)에 대한 공급이 줄어들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지난 2007년, 서울대 공대가 신임 교수를 단 1명도 채용하지 못한 사건이다. 서울대 공대는 신규 교수를 임용키로 했지만, 적임자가 없어서 임용하지 못했다. 국내 이공계의 현실이 참혹하니 우수 석학들이 국내 대학을 외면한 것이다.
이대로라면 인문학 역시 ‘이공계의 위기’와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인문학 전공자들의 공급이 부족해지면 학문의 양과 질이 모두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위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인문학이 사라져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인류의 장기적 발전에서 중요한 토대는 ‘학문의 균형적 발전’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발전은 그 동력을 잃고 무너져버리기 때문이다.
첫 문단에서 인용된 글을 읽은 한 네티즌은 ‘역시 인문학이 없으니 야만인이 되는군요’라고 말했다. 그의 의도가 어떠했든 학문의 균형적 발전을 역설하는 훌륭한 지적이다. ‘사람이 사람됨’을 갖추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인문학의 위기를 해소해야 한다. 정부와 대학은 이 문제점을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학생들의 빈 좌석을 채울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국내외 석학들이 국내 대학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재(人材)가 없는 인재(人災)는 인문학의 위기가 당면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