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과 마주하기
타인의 고통과 마주하기
  • 김원규 / 인문 대우조교수
  • 승인 2014.10.1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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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포스테키안에게 권하는 소설 (3) 위화의 『인생』
어떤 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 그런 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라는 요구를 자기 앞가림이나 잘하라는 비아냥거림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개인의 생존만이 중시되는 세계에서 어차피 타인이 고통을 받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손택(Susan Sontag)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이 스펙터클한 구경거리로 소비되는 지경에 이르면, 이제 타인이 겪는 재난이나 사고, 전쟁 같은 극단적인 상황(고통)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게임이나 영화가 되고 만다.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불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들은 어떤 식으로든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프리카 오지의 한 아이가 굶주림에 고통 받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소비 지향적 삶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인간은 세계와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의 긴밀한 관련성을 인식하고 타인의 고통을 마주함으로써, 또한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윤리적이 될 수 있다. 위화의 『인생 』(1992)을 읽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1992년 발표된 위화의  『인생 』 은 첫 장편인 『가랑비 속의 외침 』(1991) 이후 나온 두 번째 장편이다. 1980년대 말까지 위화는 실험적인 중ㆍ단편소설을 주로 발표하였으며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는 아니었다. 그러던 그가 『가랑비 속의 외침』,  『인생 』 , 『허삼관 매혈기』(1995) 등을 내놓으면서 대중적 인기를 누리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변모를 작중 인물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 변화, 세계에 대한 인식 변화 등으로 설명한다. 즉 이전까지 작가 자신이 소설 속의 인물들을 지배하려고 했다면 장편 소설 집필을 시작할 무렵에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인물들을 배치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또한 이전까지 자신이 언제나 적의를 품고 세계를 바라보았다면, 『인생 』을 쓸 때에는 동정심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으며, 삶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낙관적인 태도를 그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소설을 읽는 독자가 작가의 말을 무조건 믿을 필요는 없고, 작가의 말이 꼭 옳은 것만도 아니다. 소설에 대한 해석, 판단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작가가 어느 정도 밝힌 것처럼 『인생 』은 이전의 소설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으며, 이 소설이 세계-‘운명’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하는-의 비정함과 폭력성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생 』 에는 비정한 세계(운명)를 견디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생생한 모습이 그려진다. 그는 역사와 운명이 자신에게 가한 무자비한 폭력을 잊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마주서서 똑바로 응시하려고 한다. 그는 더 이상 세계(운명)의 폭력성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한낱 소설적 장치(도구)가 아니다.
 『인생 』 의 형식적 특성으로 두드러지는 것을 두 가지 꼽자면 하나는 이 소설이 액자소설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치 옛날이야기에서처럼 주인공 푸구이(福貴)가 이야기꾼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액자소설이 그러한 것처럼 이 소설에서도 바깥 이야기와 안 이야기 중 핵심이 되는 것은 안 이야기이다. 민요 수집가인 ‘나’와 푸구이 노인의 만남을 다룬 바깥 이야기는 ‘나(푸구이)’의 고달픈 인생을 담은 안 이야기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이 안 이야기에서 푸구이 노인은 화자인 ‘나’가 되어 자신이 살아온 사연 많은 이야기를 이야기꾼이 되어 들려준다.
 『인생 』 에서 푸구이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한 인간이 견뎌온 고통의 기억들이다. 푸구이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자신의 삶이 “정말 평범”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생 』 에 그려지는 푸구이의 삶이 평범한 삶일 리는 없다. 그럼에도 푸구이는 이 고통의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민요 수집가인 ‘나’에게 즐겁게 털어놓는다.
소설에서 푸구이 노인의 목소리는 민요 수집가인 ‘나’를 향해 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인생 』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다. 푸구이 노인은 책을 집어든 독자들을 향해 자신의 고통 어린 기억을 공유해달라고 요구한다. 푸구이 노인의 어찌 보면 현실 순응적인 태도가 독자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그의 현실을 달관한 듯한 태도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좋든 싫든 독서 행위를 통해 이미 푸구이 노인의 목소리, 타인의 고통 어린 기억이 우리의 내부로 스며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타인의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책( 『인생 』 ), 나아가 세상이라는 텍스트)을 펴는 순간,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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