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삶: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길
선비의 삶: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길
  • 고정휴 / 인문교수
  • 승인 2014.10.15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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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는 선비의 나라였다. 그 왕조가 밖으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안으로는 이른바 사화와 당쟁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도 500년 넘게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사림(士林) 즉 선비라는 지식인층이 두텁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비란 어떤 사람을 일컫는가? 이에 대하여는 구구한 해석들이 있다. 예컨대,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정의에서부터,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에 대한 호칭으로, 특히 유교 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 또는 신분 계층을 지칭한다”라는 학자적 소견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선비상은 한마디로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린다)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생 대학(大學)』에 따르면, ‘수기’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앎을 다하고(格物致知),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어 뜻을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正心誠意)라고 되어 있다. 자신의 지식과 도덕적 완성이 있은 뒤에 남을 다스리는 길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스린다 함은, 백성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만드는 교화(敎化)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선비의 포부는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모든 선비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벼슬살이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자리에 나아가야 할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었다. 그들은 벼슬에 연연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소인(小人)이라고 했다. 군자(君子)는 결코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벼슬에서 물러나도 후학을 가르치는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신양명보다는 학문 연마와 후진 양성에 더 큰 뜻을 둔 선비들이 굳건히 버티고 있었기에 조선왕조는 그 오랜 세월을 지탱할 수 있었다.
옛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것은, 요즈음 벼슬 때문에 세상이 혼탁하고 나라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후 이런저런 사람들이 정부의 고위직을 맡겠다고 나섰다가 망신(亡身)하는 사례를 우리는 심심찮게 본다. 오죽하면 인사가 망사(亡事)요 참사라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이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그 자리에 나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벼슬만 보고 달려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명권자가 자신의 뜻에 순순히 따르는 사람들만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운 좋게 벼슬을 얻으면 오로지 위만 쳐다보고 밑은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민생이 어떻겠는가?
우리 대학의 상황도 위태롭다. 현 총장은 연임하겠다고 두툼한, 그러나 요령부득의 <자기업적평가서>를 공개하고, 교수들은 10명 중 8명이 연임은 안 된다는 의사를 표출했다. 다음 주에 있을 재단 이사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럴 때에 조선의 선비들은 맹자의 말을 빌어 왕께 아뢰었다. “좌우(左右, 측근)가 다 말하기를 어질다 하여도 가(可)하게 여기지 않으며, 여러 대부(大夫, 벼슬아치)가 다 말하기를 어질다 하여도 가하게 여기지 않으며, 나라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어질다 한 후에야 살펴서 어진 것을 본 연후에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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