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
서울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
  • 박형주 / 수학 교수
  • 승인 2014.09.25 19: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글로벌 교류와 협력의 중요성
특정 분야에서의 전 세계적인 교류라는 개념의 원조인 근대 올림픽은 1896년 아테네에서 시작되었다. 단일 국가를 넘어선 국가간 경쟁의 도입으로 스포츠를 통한 인간 한계에의 도전과 이를 통해 이전에는 인간이 다다를 수 없다고 여겨지던 기록을 창출하는 등의 여러 성과를 냈다. 올림픽을 통한 엘리트 스포츠의 성장은 대중 스포츠의 인기를 만들어냈고, 스포츠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효과도 있었다. 
스포츠 말고도 글로벌 교류의 필요를 일찍 깨닫고 시작한 분야가 수학이다. 세계수학자대회(ICM)는 1897년 취리히에서 처음 개최되어 4년마다 개최되니 근대 올림픽의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 수학의 노벨상으로도 불리는 필즈상이 바로 이 ICM 개막식에서 수여되고 개최국 국가원수가 수여하는 전통도 성립되어 있다. 스포츠에서의 글로벌 교류가 인간 한계의 극복을 이끌어낸 것처럼, 수학에서의 글로벌 교류는 사고의 교환을 통한 난제 해결을 이끌어 냈다. 풀리지 않는 난제는 역으로 우리 생각의 허점을 드러내며 기존의 틀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래서 난제는 새로운 사고와 진보를 이끌어내는 화두가 된다. 다자간 사고의 교환을 통한 집중적인 해결 노력을 야기하며 세계관의 파격적 확장, 즉 새 패러다임을 이끈다. ICM은 현재의 틀로는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수학적 난제를 정리해서,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를 분명히 하는 노력을 이끌어왔다.
서울 ICM은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서울 COEX에서 개최되어 전 세계 122개국에서 5,200여명이 참가하였는데, 이는 참석 국가 및 참가자 수에 있어 역대 최대 기록이다. 개막식에서는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포함한 여러 상의 시상식이 열렸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직접 시상했다. 서울세계수학자대회 최고의 스타는 단연코 마리암 미르자카니였다. 필즈상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라는 기록을 세우면서, 주최자와 시상자 그리고 수상자가 모두 여성인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외에 아빌라, 바르가바, 헤어러가 필즈상을 수상했는데, 필즈상은 그동안 미국, 유럽, 일본 등 수학 선진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들만 수상하였으나, 처음으로 남미인 브라질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아투 아빌라가 수상하는 기록도 주목받았다.
네반리나 상을 수상한 수브하시 코트는 컴퓨터과학자인데, 계산복잡도이론 분야에서 유일게임예상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가우스 상을 수상한 스탠리 오셔는 이미지처리의 수학이론을 개척했는데, 공학자 및 응용 과학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범죄자 수색, 애니메이션 영화의 제작, MRI 영상의 분석력 향상 등 많은 분야에 큰 기여를 하였다. 수학대중화상인 Lelavati상 수상자인 아드리안 파엔자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수학자이며 과학 저널리스트인데, 수학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대중과 함께 하겠다는 열정을 바탕으로 다수의 수학책을 저술하였으며, 수학과 과학에 관한 여러 TV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ICM은 수학의 대중화를 여는 큰 사건이기도 했다. ICM을 전후해서 이루어진 각종 수학문화 프로그램은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우리나라에서도 수학을 즐기는 문화적 토양이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대회 기간 동안 2만 명 이상의 일반인이 참가한 대기록은, 앞으로의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쉽게 깨지지 않을 기록으로 간주된다. 개막식날 저녁에는 수학적 이론을 증권시장에 접목하여 세계 최고의 트레이더로 불리는 James Simons의 대중강연이 있었다. 2008년부터 3년 동안 10조 이상의 개인 수입을 기록한바 있으며 포브스 부자순위 70-90위에 지속적으로 랭크되고 있는 거부인 사이먼스는 재산 대부분을 과학 및 교육의 발전을 위해 기부한 바 있는데, 본인의 인생에서 수학이 가졌던 특별한 역할에 대해 5천명의 청중에게 강연하면서 미래의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에서 수학이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2. 과학공학 교육에서의 수학의 역할
수학적 도구와 사고력이 기술적 혁신을 이끌어낸 예는 차고 넘친다. 구글에서 어떤 단어나 표현을 가지고 검색을 해보면, 보통은 앞쪽에 나오는 검색결과가 우리가 원했던 결과인 경우가 많아서 통상은 뒤쪽 페이지까지 갈 필요가 없다. 구글은 어떻게 검색결과를 서열화해서 앞쪽에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배치하고 보여주는 걸까?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Larry Page의 이름을 딴 Page Rank라는 아주 수학적인 알고리즘이 이런 마술을 만들어 냈다. 검색결과를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고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구글은 마술과도 같은 답을 한 것이다.
영상통화는 어떤가? 영상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어 보내면, 신호가 벽에도 부딪치고 공기의 온도차도 겪고 우여곡절이 많아서 변질된 신호가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변질된 신호에서 에러를 찾고 자동으로 교정해서 원래의 영상신호를 복원해내는 코딩이론은, 20세기 중반에 쉐넌이 <통신의 수학적 이론>이라는 논문을 통해 개발한 수학이론에서 출발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맞춤교육이 필요했고 주효했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에서 단시간에 근대화를 이루어내도록 한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 이 패러다임이 유효한가? 대학에서 많이 배워서 기업에 들어가 맡은 역할을 잘하는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배운 것이 1-2년만 지나도 이미 낡은 기술이 되는 시대인데, 그 뒤에는 어쩔 것인가? 기존 기술을 향상시키는 수준이 아닌, 파괴적 창조로 볼만한 수준의 혁신이 새로운 시대를 이끌면서 지식의 유효기간은 더욱 짧아지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교육의 틀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하며, 특정 영역에 숙련된 인력의 배출은 더 이상 교육의 주요 목적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특정 지식의 교육은, 그 지식이 곧 낡은 지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 인재의 주요 소양은 자기 분야의 흐름과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이고,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이해하고 흡수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미래 인재가 반드시 가져야할 소양에 당연히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력이 들어가는 것인데, 이는 포스텍의 교육에서도 깊이 고민해볼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