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인류에 봉사하는 대학
국가와 인류에 봉사하는 대학
  • 금병락 / 생명 11
  • 승인 2014.04.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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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인류가 직면한 도전 과제들에 대해 혁신적인 해법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대학.’
이러한 문구를 어디선가 본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 대학의 건학 이념이자 사명이다. 이 숭고한 우리 학교의 이상에 대해 들었을 때 무언가 벅차 오르거나 감동을 느끼는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매년 무수한 경쟁을 통해 그 잠재력과 도전 정신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약 320명의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입학한다. 그들은 입시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지성의 요람인 대학교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도야한다. 입시라는 단기적인 목표를 떠난 그들의 눈빛은 설렘과 열정으로 반짝이며 이상의 은빛 날개를 펼치기 위해 가다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높은 학년으로 진급할수록 꽤나 많은 학생들의 날개는 회색 빛으로 변하고 펼치기는커녕 감추려 드는 듯 하다. 품었던 야망은 어설펐던 패기로 치부하고 결국 현실에 안주해버리는 나약함에 빠져 높은 연봉, 안정적이고 편한 직장, 평범한 삶을 위해 포스텍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입학사정관제도로 엄선된 소수 정예의 학생들의 꿈이 고작 그 수준에 머물러서야 되는 일인가? 국가와 인류에 봉사하고 도전 과제들을 해결하자는 결의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인가?
우리 학교 학생들은 성실함이라는 칼과 문제해결능력이라는 방패로 무장하고 있다. 기업에서도 그 탁월함을 알아주기 때문에 취직의 길은 보장되어있음을 대부분 잘 알고 있다. 즉, 마음만 먹으면 대학을 졸업한 이후 몸담게 되는 분야에서 얼마든지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려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안정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이자 교수법에 있어서 선구자 역할을 하는 조벽 교수님은 심리학자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인용하여 말한다. 얼마 전까지는 웰빙(Well-being)의 시대, 즉 사람들의 육체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붐이 일었고, 그 이후에는 힐링(Healing)의 시대라 하여 정신적 빈곤을 채우고자 하는 유행이 있었다. 이들은 심신의 안정이라는 저차원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풍조였으며, 앞으로는 빌리빙(Believing)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말한다. 이제는 안정감만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자신의 재능을 믿는 사람이 꿈을 이루고 행복할 수 있으며 고차원적인 자아 실현의 욕구가 충족될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 한다.
얼마 전 모 대기업에서 신수종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곳의 대표 이사님이 우리 학교로 특강을 왔다. 그 강연에서는 해당 분야의 최신 동향에 대한 설명과 본 사업체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최신 동향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반응이 건조했다. 그러나 강연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학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 마디가 있었다. 바로 본 회사에서는 학사 출신의 신입 사원에게 연봉으로 약 800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그 사업체가 다루는 분야에서는 석사나 박사 출신이 아니고 학사 출신에게 그러한 연봉을 지급한다는 것이 아주 파격적인 조건이었기 때문에 강연장의 분위기는 금새 술렁였다. 필자도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노력할 필요도 없고, 괜찮은 수입을 손에 쥐며 내 주변도 보살펴가며, 주어지는 일을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4년 동안 포스텍에서 절차탁마한 것에 비하면, 불확실함을 무릅쓰고 스스로를 믿으며 크게 품었던 꿈에 비하면 너무나 소소하지 않은가? 나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추기 이전에 기업의 입맛에 맞도록 남들과 비슷하게 길러지고, ‘Only one’이 아니라 ‘One of them’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빌 게이츠는 온 세계의 사람과 기업의 잠재력을 돕겠다는 꿈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립했고, 래리 페이지는 세상의 정보를 모두에게 유익하게 하기 위해 구글을 만들었다. 마크 주커버그는 세상을 지금보다 더 열린 사회로 만들고자 페이스북을 만들었고, 스티브 잡스는 단지 세상을 변화시킬 꿈만 갖고 애플을 설립했다. 이들은 자신의 안정감을 위한 삶은 과감히 뒤로 미루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열정으로 부푼 꿈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현실에 안주하기에 그들의 잠재력과 열정이 너무도 아깝다. 높은 연봉과 편한 직장, 평범한 삶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또 개인마다 상이한 계기와 목표가 있기 때문에 저러한 꿈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건 당연하다 생각한다. 그러나 저차원적인 욕구에 눈이 멀어 포스테키안으로서 갖는 사회적 책임감과 사명을 쉽게 져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학교에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억눌러 버리는 학생들이 믿음과 책임감을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모두가 세상을 비출 빛나는 보석이 될 원석임을 다시 한 번 깨닫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