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는 대한민국 생명과학 분야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주제이고, 현재도 사회 각 분야에서 관심을 두는 주제라 하겠다. 지난 2004~5년에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체세포 복제를 이용하여 개발한 복제 배아줄기세포로 우리나라가 잔뜩 희망에 부풀었을 때 불어닥친 논문 조작 사건은 필자에게도 무척 충격적이었다. 충격이 다 가시기도 전에 발표된 신야 야마나카(Shinya Yamanaka) 교수의 유도 만능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iPSC)는 황우석 사태에 더 큰 그늘을 드리우는 느낌마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그 후 10년이 좀 안 되는 지금의 줄기세포 동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유도 만능줄기세포의 전성시대
어려서 생물학에 관심이 있던 학생이라면, 어디선가 복제 개구리 사진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캐임브리지 대학의 존 거든(John Gurdon) 경의 업적이다. 체세포의 핵을 알의 핵과 뒤바꾸는 핵 치환법을 활용하여 개구리 복제에 성공하였다. 정작 본인은 한 개체 안의 모든 세포는 동일한 유전정보를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 실험이라지만, 그는 최초로 분화된 체세포가 다시 배아가 가지는 분화전능성(Totipotency: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1950년대의 마술과 같은 연구의 유전학적 원리는 50여 년이 흘러 신야 야마나카 교수에 의해 밝혀지는데, 4가지 유전자(Oct4, Sox2, c-Myc, Klf4)가 성체의 체세포를 배아 줄기세포로 되바꾸는 마법의 유전자라는 사실이다. 2006년에 발표된 그의 연구는 단숨에 줄기세포 연구의 판도를 뒤바꿔버렸다. 전세계의 유명 줄기세포 연구단들이 그의 연구를 재현해내었고, 모두가 자신의 체세포에서 유도 만능줄기세포를 가질 수 있는 날을 꿈꾸게 된 것이다.
유도 만능줄기세포(혹은 역분화 줄기세포)는 인류에게 줄기성(Stemness)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데 크게 공헌했다. 특히 2만 5000여 개의 유전자 중 단 4개를 강제적으로 발현함으로써 배아형 줄기세포를 유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유전학, 생화학, 생물리, 생물정보학 등에 많은 숙제를 던져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분화와 역분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자생물학적 지식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유도 만능줄기세포를 통해 난치성 질병을 가지는 환자의 줄기세포를 이용한 질병 연구도 가능해졌다. 현재 알츠하이머와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에 대한 연구가 줄기세포를 활용하여 활발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특정 세포가 되도록 강제적으로 유도하는 기술(Reprogramming)이 활발하게 연구되어 배아줄기세포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피부세포로부터 신경, 면역, 간, 심장 세포 등을 만들어내는 기술도 확보되고 있다. 가히 세포를 가지고 하는 연금술의 전성기라 하겠다.
하지만, 유도 만능줄기세포도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차 이야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이다. 앞서 이야기한 4개의 유전자는 인간의 몸에서 종양을 야기하는 암 발생 유전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들 유전자를 체세포에 삽입하게 되면 어김없이 종양을 야기하는 세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한계에 대한 비판이 초기부터 있어왔다. 요즘은 이들 유전자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저분자화합물만을 사용하여 유도 만능줄기세포를 만들어낸 중국 과학자들의 약진이 눈여겨 보인다.
유도 과정 자체가 지나치게 많은 돌연변이를 일으킨다는 비판도 있다. 저분자화합물만을 사용하더라도 피해가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안전한 유도 만능줄기세포를 수립했다 해도 이들을 다시 원하는 세포로 분화를 시켜 세포이식(cell transplantation)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줄기세포 유도법을 찾는 것만큼이나 안전한 분화법을 찾는 것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학계의 반응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제약이 많은 배아형 줄기세포 대신에 성체세포 혹은 성체줄기세포를 바로 이용하는 방법은 왜 쓰지 않는 것일까?
성체줄기세포분야의 약진
우리 몸은 재생한다. 매일 피부와 피가 새로 만들어지고,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봄으로써 우리 몸에 재생성을 가지는 세포가 있음을 안다. 양서류만 해도 엄청난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 팔꿈치와 어깨 중간을 절단해도 팔이 새로 난다. 팔이 새로 돋는 부분에서 역분화 현상이 관찰된다고 한다. 위대한 성체줄기세포의 힘이다. 포유류인 우리의 성체줄기세포도 조금만 도움을 주면 진화 속에 감추어진 기억을 깨워낼 수 있지 않을까? 성체줄기세포 분야의 화두이다.
성체줄기세포는 분야별 통합이 아직 엉성한 상태이다. 잘 알려진 성체줄기세포는 조혈모세포, 뇌줄기세포, 피부줄기세포, 위내장줄기세포, 중간엽줄기세포 등이 있다. 이 중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준 분야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끌지 못했던 위내장줄기세포이다. 이 중 소장의 줄기세포는 LGR5라는 유전자의 발현 여부에 따라 규정지어지는데, 2007년 한스 클레버스(Hans Clevers) 연구단에 의해서 처음 확인이 되었다. 이어 2009년 필자와 함께 박사후연구원을 했던 토시로 사토(Toshiro Sato) 박사에 의해 LGR5를 발현하는 내장상피줄기세포를 키워내는 조직배양법이 수립되었다. 사토 박사의 조직배양체는 실제 내장상피조직의 모양을 거의 그대로 구현해내기 때문에 유사장기(Organoid)라고 명명되었다. 말 그대로 배양체 내에 줄기세포, 분열세포와 다양한 분화세포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성체조직배양의 한계로 알려진 3~6개월의 배양기간을 넘어 최대 1.5년간 접시에서 조직을 배양해낼 수 있는 방법으로, 배아줄기세포를 제외한 일차 배양체(primary culture)로서는 최장 기간에 걸쳐 배양할 수 있는 신기술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기술의 배경은 성체줄기세포가 지속적으로 분열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찾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유사장기 배양법을 개발한 이후 클레버스 연구단은 같은 기술을 다양한 조직에 적용하여, 최근에는 소장을 넘어, 대장, 위, 간, 췌장의 줄기세포를 유사장기 형태로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특히 대장과 간의 유사장기 배양체는 생쥐에서 세포이식에 사용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자기세포이식의 원천으로만 여겨졌던 유도 만능줄기세포에 대한 좋은 대안으로 부상되고 있다. 거든 경과 야마나카 교수가 2012년에 노벨상을 받은 이후에 야마나카 교수와 함께 클레버스 교수가 3백만 불의 ‘생명과학 쾌거 상’(Breakthrough Prize in Life Science)을 수상한 점은 유사장기 배양을 통한 성체줄기세포의 성장이 유도만능줄기세포 분야에 견줄만하다는 의미일 듯하다.
성체줄기세포의 한계 극복하기
성체줄기세포의 새로운 배양법인 유사장기 배양법이 배아형 줄기세포에 견줄만한 배양체가 되기 위해서는 게놈 전체에서 한두 개의 염기서열만 바꾸어내는 수준의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야 한다. 그래야 유전병이 있는 아이의 간세포를 조금 꺼내어 유사장기 배양을 하고, 유사장기 배양체에서 유전병을 유전자 조작으로 치유하고, 다시 필요한 만큼 배양해서 세포 이식에 사용하는 꿈의 기술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왔을까? 필자와 클레버스 교수가 이에 대한 대답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