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의 이유
공생의 이유
  • .
  • 승인 2013.12.04 21: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이 성급한 계절이라지만 언제부턴가 기간이 너무 짧아졌다. 단풍이 색색으로 예쁘게 든 가을 풍경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추운 겨울이 시작하고 올해는 혹독한 추위가 예고되었으니 상상만으로도 몸이 으슬으슬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마흔을 넘기면서 올겨울엔 독감 바이러스 백신을 맞아볼까 하는 고민을 하곤 한다.
면역력이라는 단어가 아주 친근하게 들리는 시대이다. 면역력을 가장 쉽게 풀어본다면 이는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균들에 대한 저항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즉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병원균들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면역반응을 유도함으로써 이들을 퇴치하는 일종의 군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병원균과 접촉할지 모르는 인간에게 면역력이란 인간이 병원균들로부터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유일한 무기였을 것이다. 근대에 들어서 의*약학의 발전으로 혜택을 보고 있으나 이는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근래의 일이고, 여전히 현대에도 면역력의 보조 역할을 하는 정도인 것이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만큼 많은 종류의 세균들과 바이러스들이 우리 근처에 있다. 이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인간의 면역체계는 그만큼 많은 종류의 면역세포들을 매일 만들어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은 평생 만나지 않을 가능성이 큰 병원균들이라도 이에 대항할 수 있는 면역세포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백신을 맞으면 이러한 면역세포가 더욱 증식하여 나중에 실제로 그 병원균에 노출됐을 때 훨씬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있는 원리이다. 면역력,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우리 근처에 존재하는 세균들 중 많은 수가 이미 우리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 대부분은 소화기관 중 하나인 장(腸)에 존재하여 이를 소위 장내 세균이라고 칭한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숫자보다 10배 많은 세균이 인간의 장에 존재한다고 한다.
세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매끼 별 수고롭지 않게 맛있는 음식을 꾸준히 섭취하는 영양 과잉의 시대에 인간의 장이란 얼마나 매력적인 장소일 것인가? 이곳에 소화되는 음식들의 부산물들과 함께 세균들이 자기 영역에 둥지를 틀고 살아간다. 이들이 단지 음식 부산물들을 섭취만 하는 소위 기생(寄生, parasitism)의 형태로만 살아가는 건 물론 아니다. 인간이 분해하지 못하는 식물성 음식물을 분해하고 비타민과 같은 물질들을 생산하며, 또 미리 자신들의 영역을 유지하며 병원균들이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작용들을 한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전형적인 공생(共生, symbiosis)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오면서 필연적으로 공생하게 된 장내 세균들은 엄연히 우리 몸을 위협하는 세균의 일종이다. 단지 우리 몸을 공격적으로 뚫고 들어와 무시무시한 독소를 뿜어내는 병원균에 비해 우리 몸 안으로 조금 들어오더라도 큰 데미지를 입히지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장 표면의 손상으로 인해 이러한 공생 세균이 일시에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 경우, 당연히 우리 면역체계는 이들을 인식하고 강한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혹시 여러분이 들어봤을 복막염이 이러한 반응으로 심한 경우 인간의 생명을 너무도 쉽게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반응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우리에게, 좀 더 과학적으로 말한다면 태생적으로 세균들에게 반응할 수밖에 없이 설계된 우리 면역체계에게 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우리 면역체계가 처한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친구이자 적일 수도 있는 공생 세균과 면역체계의 아슬아슬한 동거가 한 겹의 장 세포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면역체계는 어떻게 이를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진화해왔을 것인가? 많은 과학적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오묘한 공생의 이유를 풀어가기엔 갈 길이 멀다. 따라서 현대 면역학 연구의 큰 축이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매우 타당하고, 이를 통해 왜 우리 면역체계가 포유동물의 장에서 그리도 복잡하게 발전해 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포스텍 융합생명공학부 면역학 그룹에서도 이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이 지면에 그 오묘한 면역체계와 공생 세균들의 상호 관계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을 통해 면역체계는 우리 몸에 유익한 대부분의 공생 세균들에게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하지 않게끔 조절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면역체계는 이러한 공생세균들의 끊임없는 노출을 통해 나중에 강한 병원균이 들어왔을 때를 대비하는 일종의 가상훈련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그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면서 우리 몸에 데미지를 입히지 않는 선에서 또한 공생 세균들을 다 없애지 않도록 면역체계와 공생 세균은 그 자체로 공존(共存)의 이유를 증명하고 있다.
자 다시 겨울철 고민거리인 독감바이러스로 돌아가 보자. 독감바이러스와 같은 계절성 병원균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길은 자명하다.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스스로 개인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습관 충분한 숙면을 유지하자. 혹시 본인이 평소 자주 감기에 걸린다거나 면역력이 조금 약하다고 생각할 경우 백신 접종을 안 할 이유가 없다. 유행성 전염 병원균으로부터 본인 스스로를 지키는 노력은 개인의 건강 문제를 떠나 나아가 그 사회가 집단적인 면역력을 획득함으로써 병원균의 대유행으로부터 면역력의 약자를 보호하는 공생의 이유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