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에는 과학소설(SF)을 읽어봐요
올가을에는 과학소설(SF)을 읽어봐요
  • 길한석 / 화공 10
  • 승인 2013.11.0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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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어김없이 단풍으로 체면치레를 한다. 여름과 겨울 사이에 끼어서 사라진 게 아니냐 걱정했던 가을이지만 오긴 왔다. 몇 주 덥다가 비가 올 때마다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정신 없는 10월이 끝나니, 단풍을 신경 쓸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학생회관에는 올해도 과학기술 문화콘텐츠 공모전 수상작들이 전시되었다.
시험도 끝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긴 학생들이라면, 수상작들을 둘러보며 걸음을 조금만 늦추면 어떨까? 다른 당선작도 우리대학의 문화를 느끼는데 부족한 게 없지만, 유난히 SF(과학소설) 작품이 많다는 데 주목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4명의 학우가 며칠씩 공들여 쓴 글들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작품들이 과학소설이기 때문이다.
올해 큰 인기를 끈 영화로 <설국열차>가 있다. 인류가 멸망하고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긴 기차 안에서 계급을 이루고 대립하는 세계를 그렸다. 흥행도 성공했지만 성공한 SF 영화라는 점도 독보적이다. 비록 원작은 프랑스 작가지만 한국에서 SF 영화는 손에 꼽기도 드물었기 때문이다.
흔히 공상과학이라고 잘못 번역되는 과학소설은 영미권에서 건너왔다. 과학소설의 첫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는 <해저 이만리>로 유명한 프랑스의 쥘 베른이지만, 대중적 과학소설이 인기를 끈 곳은 20세기의 미국이었다. 이젠 국민게임이란 표현도 오래된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의 세계관만 해도 이런 탄탄한 전통에서 짜였다. 이런 SF가 널리 퍼진 나라가 또 일본이다. 50년 간 꾸준히 팔린 <우주소년 아톰>이나 <도라에몽>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적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SF의 인기가 높지 않았다. 안철수 교수가 SF 작가 윌리엄 깁슨의 “미래는 이미 와 있다”라는 말을 인용했던 적이 있다. 당일 깁슨의 대표작 <뉴 로맨서>는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그 작품은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이버 사회를 다룬 소설이었고,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다이내믹 코리아’답게 현실이 변하는 속도가 상상을 능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쓰기도 개그를 만들기도 어려운 빠르고 복잡한 세상에 과학소설이 오죽할까 싶다.
그래도 미래는 콘텐츠의 시대다. 기술 자체보다는 ‘스토리’, 호기심 가는 포장이 더 눈길을 끄는 시대다. 아이폰이 성공을 거둔 것은 개별 기능의 성능보다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프레젠테이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마저도 다르지 않다. 신기함과 경이로움, 뻔한 세상에서도 낯선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는 SF적인 상상력이 그래도 필요한 이유다.
영화 한 편이 자동차 몇만 대라는 식으로 생산적이지 않아도 좋다. <뉴로맨서>를 사본 사람들이 당장 얻은 것은 없지만, 평소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게 아닐까? 언제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모를 일이다. 상상이 현실을 앞서나갈 수 있다면 그건 덤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란 상투적인 말이 있다. 계절을 핑계로 잠시 과학소설의 세계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눈에 띄는 작품이 없다면 개인적으로는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를 추천한다. 처음엔 평범한 일상적 소재에서 출발해서 어느 순간 우주 이야기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새롭게 출간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서 인류의 흥망성쇠를 느껴봐도 괜찮고, 우리대학 아태물리학 재단의 웹진 <크로스로드>에 실리는 작품들도 나쁘지 않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래비티> 같은 영화로 가을 주말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
덧붙여서 필자도 작년 과학콘텐츠 대회에 과학소설을 출품한 경험이 있다. 당시엔 출품작이 없어 졸작으로 단독 수상을 했는데, 해외 SF의 평범한 설정들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 위의 책을 읽고 흥미를 갖게 된 학생들이라면 한번 과학소설을 직접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혹시 아는가, 미래의 대 과학자나 SF 거장이 되는 데 보탬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