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기관에 제기하는 대학가의 목소리
국가정보기관에 제기하는 대학가의 목소리
  • 유온유 기자, 이재윤 기자
  • 승인 2013.09.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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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규탄하는 촛불집회가 매 주말마다 이어지고 있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라는 원훈이 무색하게도,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원장이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 무상급식 투표, 2012년 지방선거 및 대통령선거에 이르기까지 정치개입 및 선거운동에 관여한 정황이 의심되어, 공직선거법 위반 및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지난 6월 14일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었다.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인터넷 사이트에 특정 후보를 옹호하거나 비방하는 2,000여 건의 게시물 작성 및 2,000여 건의 찬반 클릭을 지시했다는 것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측이 제기한 주요 혐의이다.

우리대학의 경우 학칙과 대의성이 쟁점
검찰이 위와 같은 수사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이 대학가의 이슈로 부상했고, 몇몇 대학을 중심으로 시국선언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우리대학에서도 포스비 이슈 게시판과 페이스북 등 커뮤니티를 통해 현안에 대해 학우들 간의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부 학우들이 총학생회에 시국선언을 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따라 총학생회는 학부생들의 입장을 묻기 위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6월 21부터 25일까지 4일 간 실시했다. 이 설문에는 우리대학 학칙 제73조(학생활동의 제한) 제2항에서 학외에서 대학 명의의 정치적 활동을 금지하고 있음을 알리며 학우들의 의견을 물었다.
총학생회에서 발표한 ‘포스텍 총학생회 시국선언 관련 설문조사 결과 보고’에 따르면 유효 응답자 310명 중 △‘시국선언은 정치적 활동이 아니며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해야 한다’가 78명(25.2%) △‘시국선언이 정치적 활동이긴 하나 학칙을 어기더라도 시국선언을 하야 한다’가 57명(18.4%) △‘학칙을 준수하여 시국선언을 하지 말아야한다’가 67명(21.6%) △‘시국선언을 할 필요가 없다’가 81명(26.1%)으로 드러났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린 사건인 만큼 정치적 견해를 떠나 국가의 지성인으로서 이를 바로잡을 책무가 있다’는 것이 시국선언에 찬성한 학우들의 중론이었다. 반면 시국선언에 반대한 학우들은 ‘시국선언을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아니다’, ‘대학 명의로 입장을 표명하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 등의 반론을 폈다. 현행 학칙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총학생회가 짊어질 불명예와 피해에 대한 우려 또한 주요 반대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학생사회의 시국선언 찬반 여론이 각각 43.6%, 47.7%로 양립한 가운데 반대 의견이 다소 우세하였고, 이에 따라 총학생회는 지난 6월 25일 대표자운영위원회의를 통해 시국선언을 하자는 의견이 과반에 도달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 총학생회의 명의로 시국선언을 하지 않기로 의결했음을 밝혔다.
이후 일부 학우들은 6월 29일 ‘포항공과대학교 평학생 성명 추진 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우리대학 학생들의 성명을 모으고자 했다. 그러나 이 또한 ‘학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일부 학우들이 총학생회의 결정에 불복해 우리대학의 명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지적을 받아 이튿날 문을 닫게 되었다.
시국선언의 바람이 잦아든 이후에도 우리대학 학우들은 포스비 이슈 게시판을 중심으로 열띤 토론과 찬반논쟁을 현재까지 이어나가며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규명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서울 대학가의 여론 또한 분산된 스펙트럼
한편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에 대한 다른 대학가의 반응은 어떤 양상일까? 증거 불충분이라는 서울경찰청의 중간발표에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회원들은 국정원의 정문을 마주했고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대검찰청 앞에 섰다. 이들을 도화선으로 대학생, 교수 및 관련 단체들이 국정원 선거개입을 규탄하고 관련자의 처벌을 촉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집회에 참여한 한 여학생은 “대학에서 좋은 학문을 배우고 교과서에서 정의를 배우면 뭐하나, 우리가 외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책을 읽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대학생 단체는 대학가 시국선언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 6월 20일 남북대학생총연합은 성명서를 통해 “서울 시내 몇몇 총학생회가 학내 구성원들에게 찬반을 묻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한국대학생포럼 또한 비슷한 논지의 성명을 통해 학생들의 의견수렴 없는 대외적 발표행위는 옳지 않다는 비판을 펼쳤다.
이와 같이 대학가의 내부사정은 엇갈리고 있으며 주요 쟁점은 총학생회의 대외적 역할 범위와 의견 수렴 절차를 꼽을 수 있다. 일례로 연세대 총학생회는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78%가 의견표명에 찬성하는 것으로 집계되어 지난 7월 19일 시국선언을 발표할 것이라고 입장을 전했는데, 이튿날 일부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펼쳤다. 총학생회의 설문 기간이 짧았고 투표율이 낮았다는 것을 문제 삼아 절차적 정당성을 주장한 것이다.
반대로 성신여대는 총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고 밝힌 와중에 총학생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직속기구 ‘청년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알려져 논란이 불거지자 총학생회를 대신해 119명의 학생들이 독자적으로 트위터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권과 지근거리에 있는 총학생회는 정권 편향성에 대한 지적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지난 8월 25일에는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 해결을 위한 대학생 시국회의’(대학생 시국회의)가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출범을 선언했다. 전국 10개 대학 총학생회와 3개 대학생 단체가 참여해 만들어진 대학생 시국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국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다. 대학생이 앞장서서 시국선언을 시작했지만, 정부는 문제해결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국회의 결성을 제안한 김형래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2011년 디도스 시국선언 이후 바뀐게 무엇이냐는 반응이 있었다”라면서 “이번에는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전국 대학에 연대를 제안했다”라고 의지를 보였다.
진상규명을 위해 헌정 사상 최초로 실시한 국정원 국정조사가 지난 8월 23일 종료되었으나 여ㆍ야간의 이견으로 결과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마무리되었다.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을 주장하는 민주당은 장외투쟁에 이어 지난 8월 27일에는 노숙투쟁에까지 돌입했다. 현재까지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매주 주말 개최되는 촛불집회의 불길을 이어나가고 있는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일부 보수단체의 ‘맞불집회’ 또한 뜨겁다.

비록 한 목소리는 아니더라도
‘순수한 지성인의 올곧은 외침’으로 인정받았던 과거에 비해 현재에는 대학생 시국선언의 영향력이 일견 위축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는 이른바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대학생들이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기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분석이 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이 표면화된 시기가 하계방학 기간이라 학생들의 의견을 폭넓게 모으기 어려웠고, 총학생회의 대의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학생들의 불신도 이에 한몫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대학 고정휴(인문) 교수는 “70~80년대의 경우 정보의 유통이 단순하고 정치 민주화를 쟁취하자는 데에 모두가 공감해 여론이 복잡하지 않았으나 현재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한 이념의 대립이 격화돼 가장 중요한 사실 검증조차 초점이 흐려지고 의견이 분분하다”라고 지적하며 “특히 대학생 세대는 인터넷에 민감한 만큼 우려가 크다”라고 전했다.
국가공무원의 직무가 사적 이해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왜곡된 여론을 조성해 권력 옹호와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암묵적으로 활동하는 정보기관의 권력에 대항할 당위성은 단체를 대표하는 다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편중되지 않은 다수의 주지는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와 같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향이 어디인지 숙고해야 한다. 정보기관이 자정작용을 가질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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