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과 자기다움
강남스타일과 자기다움
  • 노승욱 / 인문 대우 조교수
  • 승인 2013.05.22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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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에서 <글쓰기> 과목을 강의하면서 학생들로부터 통과의례처럼 듣는 말이 있다. “교수님, 저는 글을 정말 못 써요.” 이러한 말은 <발표와 토론>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서도 예외 없이 듣곤 한다. “교수님, 저는 정말 말을 못 해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자신들이 글을 못 쓰고, 말을 못 하는 이유를 너무도 조리 있게 타당해 보이는 논거를 들어가면서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영미인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영어를 못 하는지에 대해 영어로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우리대학 학생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공학계열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편견에 불과하다. 필자도 한때 그러한 선입견을 가졌던 때가 있었다. 주로 남학생들로 가득한 공대 수업에 들어가서 강의를 하면서 이 학생들은 글쓰기나 인문학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필자 뿐 아니라 동료 선생님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대 수업을 맡게 된 학기에는 주위 선생님들로부터 위로에 가까운 격려를 받곤 했다.
그러던 중에 필자에게 패러다임 시프트의 계기가 찾아왔다.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공대 학생 한 명이 제출한 과제를 읽으면서 편견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학생은 사람들이 별로 깊게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을 소재인 ‘똥’에 대해 매우 재미있는, 그러면서도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완성했다. 그때부터 공대생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는 달리 직관적인 발상을 매우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문사회계 학생들은 발상의 단계에서 복잡한 자기검열을 거치다 보니 오히려 창의적 아이디어를 사장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러한 복잡한 검열의 공정에 얽매이지 않고 직관적인 발상을 선호하는 공대생들은 무모해 보일 때도 있지만 반면 매우 신선한 착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패기 있는 착상 후에 공대생들이 갖고 있는 과학적 분석력을 통해 논리를 전개시키면 창의성과 논리성을 겸비한 매우 이상적인 글이 탄생할 수 있다.
글쓰기나 말하기에 있어서 인문사회계 학생들의 스타일은 결코 표준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공대생들은 글쓰기와 토론 같은 분야의 주인공은 인문사회계 학생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조연으로 여기는 공대생들의 이러한 편견은 바뀌어야 한다. 필자는 수업시간에 우리대학 학생들에게 자신들이 갖고 있는 공대생의 특성을 숨기거나 버리지 말라고 강조한다. 창의적인 생각과 표현은 자신이 가장 자기다울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다움을 구현하는 것은 우주에서 유일무이한 하나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것과 같다. 공대생으로서의 자기다움을 자각하고 자신 있게 자기다움의 스타일을 만들어나갈 때 언젠가 그 스타일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창조적인 패턴이 될 수 있다.
작년에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은 자기다움의 스타일이 갖는 경쟁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강남스타일>은 한국어 가사로 만들어진 노래다. 또한 싸이는 이른바 아이돌 스타도 아니고 한류 스타도 아니다. 그런 <강남스타일>이 현재 유투브에서 16억 뷰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선보인 뮤직비디오 <젠틀맨>도 조회 수 3억 2천8백만 뷰를 넘어섰다. 무엇이 전세계인을 싸이의 한국어 랩과, 말춤, 시건방춤 등에 사로잡히게 했을까? 폭소를 자아내는 코믹한 에피소드 영상일까, 아니면 분당 120회 반복되는 일렉트로닉 비트 때문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바로 ‘싸이다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싸이가 보여준 것과 같은 자기다움의 모습을 우리대학 학생들에게서 발견할 때가 있다. 지난 학기에 필자에게 글쓰기를 배웠던 한 학생은 법과 수학의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수학적 시각으로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논하는 글을 작성했다. 그 학생은 인문사회계 학생들의 글을 모델로 삼지 않고 공학도로서의 자기다움에 충실했다. 그 결과 수학의 방법론으로 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필자는 앞으로도 공학도로서의 자기다움을 인식하고 꾸준히 자기다움을 완성해가는 포스테키안들과의 만남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