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길
내리는 길
  • 이승훈 객원기자
  • 승인 2013.04.10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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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받아들인다는 것
직면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내일이 시험인데 전혀 공부하지 않은 나를 발견했을 때, 내일이 신문 기사마감인데 써놓은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소위 ‘멘붕’이란 단어로 쉽게 치환되는 이러한 상황들을 사실 우리 모두는 매일 겪고 있다.
해결책은 꽤 간단하다. 그리고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어찌되었건 ‘지금 당장 시작해보자’라는 진부한 조언. 이미 지나가버린 과오를 탓하기보다는 현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 하는 게 훨씬 발전적이라는 것 따위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는 아니 사실 나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한 순간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탈출하고자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내가 직면한 현실을 회피하려고 애써왔다.
우리가 매일 겪고 있는 이러한 현실회피는 사실 정신적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다.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인식하는 순간 내 자신의 무가치함에 대해서 깨닫게 되기에 그러한 상황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려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며 보통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현실회피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러한 실수나 잘못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다’라는 자신에 대한 부정.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현실회피는 사실 더 나은 사람이 되길 원하는 개인의 이상에 대한 열망과 맞닿아 있다.
모든 인간은 이상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 선위에서 걷는다. 이상에 비해 현실이 보잘 것 없을수록 인간은 유토피아를 꿈꾸며 현실을 회피하게 되지만 이러한 회피가 반복될수록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더 커져 더 쉽게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는 악순환의 길로 빠진다.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는 참혹한 유럽의 현실 속에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닌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축으로써 유토피아를 그려냈다. 우리에게 이상이란 현실회피를 하게 하는 좌절감의 원천이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투시해줄 수 있는 축으로써 존재해야만 한다. ‘어디에도 없는 곳’을 의미하는 유토피아.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철저하게 현실을 직시해야만 유토피아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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