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얼룩의 물리학
커피얼룩의 물리학
  • 제정호(신소재) 교수
  • 승인 2013.03.0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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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얼룩에 남은 물리적 효과가 첨단 소재기술의 실마리로

커피를 마시면서 가끔 테이블 위에 커피 방울을 떨어뜨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커피 방울은 서서히 마르면서 동그란 반지 모양의 얼룩을 남긴다. 왜 커피얼룩은 반지 모양을 할까? 이처럼 흔히 관찰되는 반지 모양의 얼룩은 별거 아닌 일로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이 현상에 첨단소재 제작의 최신 인쇄기법을 개선할 수 있는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커피는 실제로 나노 크기의 커피 입자와 물의 혼합물이다. 1997년 시카고대 물리학과 연구팀은 나노입자 또는 마이크로 콜로이드가 미량 함유된 액체방울이 공기 중에서 서서히 증발하는 과정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흥미롭게도 커피얼룩이 만들어지는 것과 동일한 현상을 관찰했다. 나노입자가 미량 함유된 액체는 나노잉크라고도 부르며 이를 원하는 표면 위에 분사하여 인쇄하는 공정이 바로 잉크젯 인쇄기법이다. 잉크젯 인쇄는 낮은 비용으로 손쉽게 고품질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므로 첨단 유연 전자소자나 생체소자를 만드는 데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커피얼룩처럼 나노입자가 균일하게 코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학자와 공학자의 관심사는 여기서 접점이 생긴다. 커피얼룩이 반지 모양처럼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억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액체방울의 모양
작은 액체방울이 평평한 고체 표면 위에 떨어지면 볼록한 모자(cap) 모양이 된다. 액체방울 모양은 크기가 작으면 거의 완전한 구형이고 커지면 약간 찌그러지며 아주 커지면 팬케이크 같은 모양이 된다. 액체방울의 정확한 모양은 액체 고유의 표면장력과 점성, 그리고 액체방울 크기에 따라 달라지며, 주로 중력과 모세관력의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 중력의 영향을 받는 임계크기를 모세관 길이(capillary length)라고 한다. 물의 경우, 모세관 길이는 약 2.7 mm이며, 액체방울이 이보다 작으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거의 완전한 구가 된다.

전자기학과 커피방울
액체방울의 증발 현상은 전기도체에서 전기장이 뻗어 나가는 현상과 유사하다. 전자기학을 정립한 맥스웰이 액체방울의 증발을 연구했다는 것은 놀랍지 않은 사실이다. 액체표면에서 수증기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원리는 일반적으로 수증기의 확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확산은 모든 방향에 대해 일어난다. 흥미로운 것은 액체방울의 중심 표면과 가장자리 표면에서 증발량, 즉 공기 중으로 확산하는 수증기의 양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증발은 체적 대비 표면적 비율과 관련이 있다. 같은 체적의 액체일지라도 표면적이 커지면 증발량이 더 많아진다. 따라서 액체방울의 중심 보다는 가장자리에서 체적 대비 표면적 비율이 크기 때문에, 액체방울의 가장자리로 가까이 갈수록 수증기의 증발량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이 현상은 감자 조각을 기름에 튀길 때 평면 보다 모서리 끝이 더 빨리 튀겨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모세관 유동의 발견
시카고대 물리학과 연구팀은 액체방울이 증발할 때 중심과 가장자리에서 증발량이 다르다는 것에 주목했다. 액체방울 표면 위치에 따라 증발량이 다르면 액체 내부에서 표면으로 액체를 보충하는 양도 달라질 것이다. 따라서 유체 흐름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액체방울 내부 바닥의 중심에서 가장자리 방향으로 액체의 흐름이 발생하게 된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 관찰에 따르면 이 흐름은 액체방울의 바닥에서 주로 일어나며 모세관을 통해 흐르는 것과 유사하여 모세관 유동(capillary flow)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형광물질이 함유된 나노입자를 물방울에 넣고 유리 표면 위에 떨어뜨린 후 증발하는 과정을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나노입자가 액체 유동을 따라 가장자리 방향으로 이동해 가서 가장자리에 동그란 반지 모양으로 쌓여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시카고대 물리학과 연구팀은 이러한 발견을 1997년 네이처 논문에서 발표하였다.

남겨진 질문
시카고대 물리학과 연구팀의 획기적인 연구가 있었던 후,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남게 되었다. 동그란 반지 모양의 커피얼룩이 만들어지려면, 애초에 고체표면 위의 액체방울이 볼록한 모자 모양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중심과 가장자리의 위치에 따라 체적 대비 표면적 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원래 물과 같은 수용성 액체는 계면 에너지가 높은 대부분의 고체 표면(예: 유리) 위에서 볼록한 모자 모양이 아니라 퍼지는 성질에 의해 평평한 모양이 된다. 시카고대 물리학 팀은 나노입자가 함유되면 자발적으로 물방울의 모양이 볼록한 모자 모양으로 만들어진다고 가정했다. 이것은 나노입자에 의해 액체방울의 퍼짐이 억제되기 때문인데 이것을 자발고착(self-pinning)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노입자는 왜 자발고착을 일으킬까? 그리고 커피얼룩을 만드는데 나노입자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지난 십 년이 넘도록 구체적인 답이 제시되지 못했다.

나노입자에 의한 자발고착
나노입자가 액체방울의 가장자리에서 고착되는 과정을 설명하려면, 나노입자와 고체, 액체, 공기와의 상호작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노입자는 액체방울 가장자리에서 공기에 접한다. 이때 액체의 표면장력이 나노입자를 더 이상 공기 쪽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붙잡는다. 이것을 모세관력이라고 한다. 액체가 원래 고체 표면 위에서 퍼지는 성질이 있더라도 나노입자의 개수가 많아지면 액체방울을 더 이상 퍼지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액체의 퍼짐은 액체와 고체 및 공기의 계면에너지에 의해 결정되는데, 나노입자의 총 모세관력이 퍼짐력을 상쇄하면 퍼짐이 멈출 것이므로 액체방울의 퍼짐을 멈추게 하는 임계 조건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이 조건은 나노입자와 무관하게 참여한 액체, 고체, 공기의 계면에너지와 액체방울의 접촉각에 의해서만 결정된다. 즉, 자발고착을 일으키는 나노입자의 임계량이 존재하게 된다.

최신 실험 결과
본 연구팀은 공초점 형광현미경을 이용하여 형광을 띄는 나노입자가 액체방울의 퍼짐을 억제하는 순간을 직접 관찰하며 나노입자의 임계량을 측정했다. 데칼린 액체 내에 함유된 PMMA 콜로이드 나노입자의 경우, 자발고착을 일으키는 나노입자 임계량은 액체방울 가장자리 전체길이의 약 10%였다. 이와 같은 결과는 물 안의 PS 콜로이드 나노입자를 가지고 처음 커피얼룩의 원인을 규명했던 시카고대 물리학과팀과 동일한 결과이다. 이 임계값은 나노입자의 크기, 함량, 액체방울의 크기 등과 무관하게 일정했다.

연구의 중요성
나노입자의 균일한 코팅은 많은 공학자가 실현하려고 하는 잉크젯 인쇄기법의 요구사항이다. 균일한 코팅을 얻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제안됐다. 펜실베이니아대 물리학과 연구팀은 타원의 나노입자를 가지고 성공적으로 균일한 코팅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어 2011년 네이처 표지논문을 장식하였다. 이듬해 커피얼룩의 물리학은 물리학, 공학 분야에서 폭발적으로 인용되며 많은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본 연구는 나노입자와 액체에서 비롯되는 모세관력의 역할을 규명하여 <피지컬 리뷰(Physical Review E: Rapid Communications)>에 발표했으며, 역-커피얼룩 효과로 알려진 현상을 규명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자발고착 현상은 근본적으로 커피얼룩이 동그란 반지 모양으로 생기는 원인을 설명한 것이며 자발고착을 일으키는 나노입자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단초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커피얼룩은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관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첨단 인쇄기법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나노입자의 특성을 적절히 조절하여 나노입자에 의한 액체방울의 자발고착을 억제할 수 있으면 커피얼룩을 근본적으로 억제하여 균일한 코팅을 보다 쉽게 얻을 수 있다. 본 연구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물리학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게재될 수 있었다.
본 연구팀은 커피얼룩을 억제하고 균일한 코팅을 얻을 수 있는 쉽고 범용적인 방법을 개발 중이며 이를 활용하여 첨단 전자소자와 생체소자의 제작을 구현하려 한다. 이러한 커피얼룩에 관련된 물리적 원리는 재료공학, 전자공학, 생물공학 등의 분야에서 첨단 소재와 소자의 특성을 개선하고 정보기술산업을 보다 더 증진시키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