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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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택 기자
  • 승인 2012.10.1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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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인가
동양사에서 가장 태평성대를 이뤘던 시기로는 ‘요순시대’를 꼽는다. 요순시대는 지금부터 수천 년 전의 요 임금과 순 임금이 다스리던 시대로 진정한 이상적인 군주가 다스렸던 시기이다. 하지만 역사의 진위를 알 수 없는 과거이기 때문에 그들의 태평성세가 현재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평화롭고, 요 임금과 순 임금이 인간의 역사시대에서 진정으로 으뜸인 지도자였을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요 임금과 순 임금은 유가사상에서 이상으로 삶는 군주의 모습이며, 요순시대는 이상적인 사회 모습이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동양인)가 동경하는 리더의 모습이며,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인간이 평등한 체계보다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있는 계급 사회에 더 익숙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많은 동물들은 결국 새로운 평등한 사회보다는 인간의 지배에서 돼지의 지배로 바뀐 크게 다르지 않은 계급 체계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인간의 습성에 비춰 봤을 때, 잘 짜인 계급 체계가 인간 사회에 더 적합한 구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순시대가 지나고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고,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의 절대 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의 계급 사회는 무너졌고, 근현대의 평등 사회가 등장했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다른 방향으로 현재의 사회가 조직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인간의 본성에 의해서 현재의 평등 사회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절대 군주보다는 집단의 결정에 따르는 리더를 뽑고, 계급화된 사회보다는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제공되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평등한 사회를 구축해야 하는 걸까. 사실 태평성대만 이룰 수 있다면 절대군주가 존재하든, 계급이 존재하든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저 태평성대만 이루는 것이 답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평등한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위대한 군주가 수십 년을 다스리고 사라지는 것이나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는 계급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위대하지는 않더라도 최선을 선택하면서 평등하게 사회를 조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과연 지속가능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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