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체계 위에 존재하는가
과학은 체계 위에 존재하는가
  • 강명훈 / 전자 09
  • 승인 2012.09.2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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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발견, 철의 개발, 증기기관 발명, 컴퓨터의 발명 등은 인류사회에 혁신적인 변화들을 불러왔다. 그 중에 두드러진 것은 권력 구조의 변모라 할 수 있다.
불을 발견한 인류는 농경 생활을 시작함으로 식량 확보에 있어 짐승이나 불을 사용하지 못한 부족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고 결과 ‘족장’이라 불리는 지배 체제가 만들어졌다. 철의 개발은 강한 무기를 가진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복하는 질서를 만들었다. 나머지 증기기관, 컴퓨터의 발명 모두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선진국과 후진국 이 두 가지를 갈랐다.
이처럼 인류가 변동기를 겪을 때마다 그 뒤에는 기술의 개발, 즉 과학의 발전이 뒤따랐다. 여기서 변동기라 함은 체제와 질서의 변화다. 세계의 60억 인구의 90% 이상은 사람들끼리 규정한 체제 안에서 질서를 지키며 살고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규정된 체제 위에 설 수 있는 사람이 과학자라면 재밌는 사실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1세기 전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상공업은 천시되던 직종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기업들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과 100년 만에 권력 체제가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질서체계를 말할 때 흔히 정부-기업-소비자로 구분한다. 왕이 모든 질서의 중심이었던 과거에서 지금의 질서를 이룩해놓은 것이 과학이라면 향후 100년 후라도 과학으로 인해 지금의 질서가 바뀌는 것 역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전에 증명해야 할 명제는 진정 과학이 질서를 바꾸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과학이 질서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군주 체제에서 정부-기업-소비자로 구분되는 지금의 질서는 민주주의의 도입으로 인한 결과일 뿐 산업혁명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과학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례는 드물다. 그러나 여기서도 간접적으로 과학은 분명히 관여한다. 지금의 질서에서 기업이 부각되는 이유는 이윤을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윤은 명백히 기술에서 나온다. 소비자 역시 과거의 백성과는 개념을 달리한다. 일반 시민들 중 컴퓨터나 인터넷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시민의 지적 정도를 불과 100년 만에 지금의 수준까지 올릴 수 있던 것은 제도적 절차 외에도 과학적 기술에 근거한 TV, 휴대폰, 인터넷 뉴스 등 파급력 있는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얘기로 들어가보자. 질서가 바뀐다는 것은 우선권 즉 기호하는 가치가 변한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사람들은 어두운 밤에 양초를 키는 것보다 백열등을 키는 방법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백열등이라는 선택지로 기호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의 기호가 변하는 순간은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순간, 즉 과학이 일보 전진했을 때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삼성과 애플과의 기술 저작권 분쟁이 과학으로 인한 질서 변화를 잘 일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삼성과 애플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세계의 IT분야(특히 휴대기기)에서 톱을 다투는 기업들이다.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현재 두 기업은 ‘기술’을 둘러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최인호 작가의 <상도>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의 상권끼리의 싸움은 어떤 시기에 어떤 물건을 팔면 좋을지, 어떻게 팔면 좋을 지가 승부를 좌우하는 현대어로 말하자면 마케팅 싸움이었다. 지금까지도 기업 간의 마케팅 싸움은 매우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삼성과 애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톱 클래스의 기업들의 싸움에서는 기술의 승패가 기업의 승패를 가르고 있다.
기업만이 아니다. 더 이상 치고 박는 싸움은 없어진지 오래다. 잘 알려진 DDOS 사태처럼 국가끼리의 치열한 정보전으로 서로의 우위를 다투고 있고 시민들도 정보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갈구한다. 국가든 사람이든 저도 모르게 과학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사실로부터 알 수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모든 분야의 상위를 점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비유하자면 과학은 그릇의 틀이다. 하지만 텅 빈 그릇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내용물을 쌓아올리는 것은 나머지 분야의 역할이다.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사실’과 ‘전망’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과학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머지않아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게 된다면, 혹은 공상과학에서나 나오는 타임머신이 실제로 만들어진다면 지금보다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과학이 직접 관여하는 것은 드문 일이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인류의 그릇의 크기를 키운 과학에 이 이상의 가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이공계학도들이 과학을 연구하고 미래를 보고 있다. 한 명의 이공계학도로 선배들이 남겨놓은 발자취에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 같은 길을 걸어갈 동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