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온열치료
자기 온열치료
  • 천진우 / 연세대 화학과 교수
  • 승인 2012.05.0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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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석 나노입자, 항암치료의 새 시대를 열다
“Those who cannot be cured by medicine can be cured by surgery. Those who cannot be cured by surgery can be cured by heat. Those who cannot be cured by heat are probably incurable.” 기원전 400년경,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약물치료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은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하고, 외과적인 수술로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은 열로써 치료가 가능하며, 열로써 낫지 못하는 질병은 치료할 수 없다”고 말을 하였다. 이처럼 열(heat)은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의학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현대 의학에서도 열을 이용하여 암을 제거하는 온열치료가 시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온열치료는 암세포가 열에 약하여 42℃ 이상의 온도에서 사멸하는 특성을 이용한 질병치료 방법이다. 현재 병원에서는 열을 발생시키는 수단으로서 마이크로파, 적외선, 초음파, 레이저 등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열이 몸속 깊숙이 침투할 수 없다는 점과 질병 부위만 국부적 가열이 어려워 정상조직까지 손상을 줄 수 있다는 한계점 때문에 약물치료의 보조적 수단 정도로만 활용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온열치료법은 없을까? 기존의 온열치료 방식에 최근 나노과학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자기 온열치료가 바로 그것이다. 산화철을 기반으로 하는 자석 나노입자는 외부에서 교류 자기장을 가해줄 경우 물질의 고유한 자기적 특성으로 인해 뜨겁게 가열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열을 암을 포함한 질병치료에 사용하는 것이 자석 나노입자를 이용한 온열치료의 기본 원리이다.
나노입자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노과학기술은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의 수준에서 물질을 제어, 디자인하는 과학 분야이다. 이러한 나노기술을 통해 만들어지는 나노입자에서는 기존 벌크 물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특성들이 나타나는데, 이를 정교하게 조절하여 물질 고유의 물리, 화학적 성질을 변화시키고 사용 목적에 적합한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자석 나노입자를 이용한 온열치료의 장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나노입자는 세포 크기의 1/1000 수준으로 그 크기가 작기 때문에 혈액의 흐름을 막거나 방해하지 않고 혈관을 따라 신체 말단까지 온몸으로 이동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나노입자의 표면에 암세포를 추적할 수 있는 바이오 물질을 코팅함으로써 질병 부위에만 선택적으로 자석 나노입자를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술의 효과적인 활용도가 매우 높다.
특히 산화철(Fe304)을 기반으로 한 자석 나노입자는 인체 내에 존재하는 성분인 Fe와 O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높은 생체 적합성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자석 나노입자는 몸속에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식세포에 의해 Fe와 O로 분해되며 Fe는 헤모글로빈의 구성성분으로써 재사용된다.
자석 나노입자를 이용한 온열치료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앞서 말한 다른 유형의 열 소스와 비교하여 몸속 깊은 곳까지 침투가 가능한 자기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뇌종양, 췌장암과 같이 몸 깊숙이 위치하여 외과적 수술이 어려운 암 치료에 유리한 방식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화학요법을 이용한 항암 치료의 경우 암세포의 돌연변이로 인해 약물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이는 암 치료 효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는데, 자석 나노입자를 이용한 온열치료의 경우 온도를 증가시켜 세포의 사멸을 유도하기 때문에 암세포의 약물 저항성으로 인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이렇게 강력한 자기 온열 방식의 치료개념은 1950년대에 처음으로 소개되었지만, 아직 실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는 자석 나노입자의 열 방출량이 너무 적아 한 번의 치료에 많은 양이 주사되어야 하는 현 기술의 한계점 때문이다. 외부 자기장하에서 자석 나노입자로부터 발생한 열은 Specific Loss Power(SLP)라고 하는 열 방출 계수 값을 통해 정량화될 수 있는데, 지금까지 연구된 산화철 기반의 자석 나노입자의 경우 그 값이 보통 100~500 watt/g로써, 입자의 열 방출 효과가 미미하여 효과적인 암 치료를 위해 사용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이에 연세대학교 화학과 천진우 교수 연구진은 나노물질의 형성원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나노물질의 크기, 모양, 조성 등의 요소가 열 방출 계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함으로써 획기적으로 증가한 열 방출 능력을 지닌 자석 나노입자를 개발하였다. 물질을 나노 수준에서 제어, 디자인함으로써 최고의 열 방출 능력을 지닌 나노 자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자석 나노입자의 열 방출 계수는 자석 나노입자가 지니는 자기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며 이 자기적 특성은 나노물질의 크기, 모양, 조성 등을 변화시킴으로써 조절이 가능하다.
하나의 예로 나노 자석의 자기적 성질이 그 조성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순수한 산화철(Fe3O4) 나노 자석과 금속 불순물이 첨가된 산화철(Metal doped Fe3O4) 나노 자석 중 어떤 것이 더 높은 열 방출 효과를 나타낼까? 정답은 바로 금속 불순물이 첨가된 나노 자석. 일반적으로 물질의 순도는 물질의 특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되며 순도가 높을수록 높은 가치가 매겨지겠지만 나노 자석의 경우에는 다르다. 자석 나노입자에 어떠한 금속 불순물이 첨가되느냐에 따라 물질 내부에 있는 자기 스핀들의 배열상태가 변화하고 이는 열 방출 효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자기적 특성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적절한 종류의 금속 불순물을 첨가함으로써 열 방출 계수 값을 향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최근 본 연구진이 개발한 여러 물질 중 가장 높은 열 방출 계수를 갖는 물질은 그 값이 4,000 watt/g으로써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보고된 값 중 가장 높은 수치이며, 현재 상용화되어 있는 산화철 나노입자에 비해 약 40배 정도 향상된 값이다. 이렇게 큰 열 방출 계수 값에 도달하기 위해 산화철 자석 나노입자의 크기, 조성을 포함한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조절되었고 최적화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열 방출 효과에 유리한 조성을 갖는 자석 나노입자를 합성한 후 입자 표면에 강자성체 물질을 코팅했다. 더 나아가, 미세한 간격으로 코팅 물질의 두께를 조절하여 가장 큰 열 방출 계수 값을 나타내는 코어-쉘 구조의 자석 나노입자를 합성하였다. 개발된 자석 나노입자의 극대화된 열 방출 효과는, 서로 다른 조성을 갖는 두 가지 물질의 계면에서 발생하는 Exchange coupling으로 알려진 특별한 교환 작용으로부터 비롯된 결과이다. 이러한 고효율의 발열 나노 자석을 이용, 연세대 의과대학 박국인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연구를 통하여 암이 이식된 쥐를 치료함으로써 그 뛰어난 온열치료 효과를 확인하였다. 기존 물질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발열 효과를 바탕으로 암세포의 박멸에 성공한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전문지인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개재됐다.
높은 열 방출 효과를 보이는 나노 자석의 개발은 기존 온열치료의 한계를 뛰어넘어 효과적인 암 치료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특히 나노 자석의 모양, 크기, 구조 등의 파라미터와 그 발열 효과와의 상관관계를 규명함으로써 온열치료에 최적화된 나노 자석의 개발이 가능해졌다. 비록 현재의 기술은 동물실험 수준에 그쳤지만 나노 자석의 약동학·약리학적 연구 등이 함께 수행된다면 임상에서의 응용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한다. 외부 자기장에 반응하여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나노 자석! 나노 자석의 자기 온열치료 효과를 이용한 암 정복의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